스페인 총선은 열차 폭탄테러 배후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접근’이 승패를 갈랐다. 사건 직후 집권 여당은 자유조국바스크(ETA)를 배후로 지목했으나 정작 알 카에다가 주범이라는 증거가 나타나면서 국민적 불신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번 열차테러와 의외의 스페인 총선 결과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리주의 운동에 대한 관련국들의 대응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분리주의 현장=분리주의 움직임은 종교, 인종, 민족주의, 식민주의 유산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분리주의 운동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는 당사자들에게는 ‘독립운동’이기 때문이다.
한국군이 파병될 이라크 키르쿠크 지역의 쿠르드족도 전쟁을 계기로 독립을 추진하고 있다. 나라도 없이 중동지역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은 이라크전쟁 초기부터 독립이라는 대가를 기대하면서 미국을 적극 지원해왔다.
그러나 터키 내 1000만명에 이르는 쿠르드족의 동요를 우려한 터키 정부의 반대로 독립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러시아의 골칫거리 체첸 문제도 미해결 상태다. 지난해 12월 모스크바 크렘린궁 앞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를 비롯해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과제 중 하나지만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분리운동 세력에 대해 강력한 압박과 당근정책을 병행한다.
티베트, 신장위구르 등의 분리운동은 철저히 억압하되 최근에는 경제 현대화를 지원해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
인도 카슈미르 지역은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인 주민들이 인도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해 종교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분리주의 움직임 위축 가능성=분리주의 운동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특히 9·11 이후 확산된 반테러 움직임은 이들의 활동공간을 더욱 위축시켰다.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란 터키 등 16개국 정상들은 2002년 6월 분리주의 운동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는 ‘알마티 강령’을 채택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분리주의를 눈감아주고, 간접적으로 지원했던 나라들이 상호 불개입을 약속하면서 분리주의 운동을 원천봉쇄한 것.
이번 스페인 열차 폭탄테러가 ETA의 소행이 아니었다는 점이 확인되더라도 ETA의 분리독립 움직임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전망이다.
테러가 알 카에다의 소행인지, 다른 단체의 소행인지의 문제를 떠나 테러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