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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피플]'오아시스' 이창동 감독"너무 진지한게 제 약점이죠"

입력 | 2002-08-08 18:42:00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력으로 한국영화의 ‘오아시스’로 발돋움하고 있는 이창동감독.(이훈구기자 ufo@donga.com)


《영화‘박하사탕’의 이창동감독이 3년만에 새 영화 ‘오아시스’를 들고 돌아왔다. 매년 여름이면 극장을 점령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엇비슷한 한국 코미디 영화에 식상한 팬들에게는 ‘오아시스’는 제목 그대로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갑다. ‘오아시스’를 기다렸던 것은 국내 팬들만이 아니었다. 베니스 영화제는 출품 마감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오아시스’를 기다려줬다. 그리고 ‘오아시스’는 8월 말 열릴 베니스 영화제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베니스 진출 소감을 묻자, 그는 “베니스에 출품하는 것이 처음엔 싫었다. 그렇게까지 했다가 (경쟁부분에서) 떨어지면 자존심 상하니까. 그런 건 또 못 참는다”고 했다.

‘초록물고기’와 ‘박하사탕’ 등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영화로 호평을 받았던 그의 세 번째 선택은 뜻밖에 사랑 이야기였다.

“이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 컨셉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사랑을 더욱 쉽지 않게 다뤄보자’였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과연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오아시스' (사진제공 유니코리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사랑’은 이런 사랑이다. 한 남자가 있다. 폭력, 강간미수, 과실치사(뺑소니)의 전과 3범. 2년6개월형을 마치고 갓 출소했다.그리고 한 여자. 말 한마디만 하려해도 사지부터 뒤틀리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믿어주질 않는다. 심지어 남자는 ‘변태’라는 말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사랑을 ‘더 쉽지 않게 다룬다’는 것은?

“흔히 멜로 영화에서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동화되도록 하는 장치들을 이번에는 철저히 배제했다. 음악도 쓰지 않았고, 화면을 예쁘게 꾸미려고도 하지 않았다. 최대한 사실감있는 화면을 만들고자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핸드 헬드’기법을 많이 활용했다”

-왜 사랑 이야기인가?

“사랑은 꿈이자 환타지다. 우리는 남의 꿈에 들어가 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우리 사회는 자신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인색하다. 남의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남을 주관을 이해하는 태도의 문제다. 결국 남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TV 드라마 ‘고백’이 떠올랐다. 불륜, 이혼, 재혼 등 사랑의 여러 모습을 그리고 있는 ‘고백’의 이란 작가는 이감독의 부인이다. 이감독이나 이란씨 모두 서로의 작품에 대해서는 굳이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박하사탕’이 워낙 호평을 받아 이번 작품의 부담이 컸을 텐데.

“전혀. 나는 원래 무엇이든 집착하지 않는 성격이다. 나이도 있고.”

잘 알려졌듯, 그는 ‘늦깍이 감독’이다. 80년대 그는 ‘녹천에는 똥이 많다’ ‘소지’ 등을 써서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소설가였다. 마흔 셋에 ‘초록 물고기’(1996년)로 데뷔한 뒤 두 번째 작품으로 만든 ‘박하사탕’은 한국 영화가 건진 손꼽히는 성과로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인간이 중심에 서있다. ‘초록 물고기’의 막둥이나, ‘박하사탕’의 영호, 그리고 ‘오아시스’의 종두까지. 그는 늘 인간의 삶을 통해 사회와 현실을 말한다. 죽음으로 마무리됐던 전작에 비해 ‘오아시스’는 가장 밝고 유머러스하다. 종두와 공주의 사랑은 사회에서 끝내 인정받지 못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해피 엔딩이라고 하기엔 두 사람이 처한 현실이 무겁다.

“현실은 변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해 저항한다. 사소한 저항으로 비칠지 몰라도 사랑의 성취에 대한 의지가 있으므로 두 사람의 사랑은 ‘이기는 사랑’이다.”

그는 추한 것에 대해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경멸, 점차 세련돼 가는 현대인들의 숨은 야만성에 대해 한참 동안 말하다가“나는 늘 너무 진지한 게 탈”이라며 슬며시 웃었다. 아닌게 아니라 이감독은 2시간에 걸친 인터뷰 동안 딱 한번 웃음을 자아냈다.

자신을 ‘작가주의 감독’으로 분류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랬다.

“영화 쪽에서 ‘작가’라는 말은 마치 훈장 같은 단어로 쓰이는 것 같다. 하지만 ‘작가주의’라는 말을 들어도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난 영화 만들기 전부터 이미 작가였는데, 뭘.”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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