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 슈베린(독일)로이터뉴시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30일 독일 북부도시 슈베린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두 가지 굵직한 문제에 합의했다. 하나는 연말까지 유럽연합(EU)의 농업보조금 분쟁을 타결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라크를 공격하기에 앞서 유엔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보조금 타결 시한 합의가 EU 내부 통합을 겨냥한 것이라면 대 이라크 공격의 유엔 승인은 미국을 의식한 외교전의 성격이 짙다. 분명한 것은 두 가지 합의 모두 EU의 통합과 독자 발전을 위해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는 점이다.
▽농업보조금과 EU 통합〓두 정상은 이날 EU 확대 문제를 논의하는 12월 EU정상회담 전까지 농업보조금 분쟁을 타결하기로 합의했다.
EU의 농업보조금은 연간 약 400억유로(약 46조원)로 EU 전체 예산의 절반이나 된다. 독일은 농업보조금의 순수 공여국인 반면 프랑스는 최대 수혜국이다.
독일은 중·동유럽 10여개국의 추가 가입 이후 EU의 재정 확충을 위해 보조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적어도 2006년까지 보조금 규모를 손대지 말아야 한다고 팽팽히 맞서왔다. 보조금 삭감을 감수하면서까지 EU 확대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게 프랑스의 속내였다.
두 나라가 이처럼 평행선을 달리자 농업보조금 문제가 50여년간 계속된 유럽통합 운동에 제동을 걸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었다. 따라서 이날 합의는 유럽통합의 양대 기관차인 두 나라가 먼저 EU의 내부 결속을 다진 뒤 중·동유럽까지 규모를 확대하기로 통합 방향을 정리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EU의 ‘홀로서기’〓두 정상은 회담에서 이라크의 유엔 무기사찰단 수용을 촉구하면서도 “이라크에 대한 군사 공격이 감행된다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시라크)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한 군사행동에 참여할 국가는 별로 없을 것”(슈뢰더)이라고 미국에 제동을 걸었다.
EU가 명실상부한 유럽공동체로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느냐의 관건은 미국 일변도로 가는 세계질서 흐름에서 얼마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는 것. 이런 점에서 미국의 주도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이라크 공격 준비에 유엔 승인이라는 조건을 내건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EU 3대 강국 가운데 하나인 영국이 빠졌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영국은 EU통합과 확대에 대해서 프랑스와 독일보다 미온적이며, 전통적으로 미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9월22일 독일 총선에서 슈뢰더 총리의 재집권이 의문시되는 것도 이번 합의의 태생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