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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홍선표/한방 끌어들여 건보 재정 다지자

입력 | 2001-10-15 18:21:00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의약분업이 시행된지도 1년이 넘어 정착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 파탄은 의약분업의 의미 자체를 퇴색시킬 정도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정부는 환자 본인의 부담금을 평균 40.6% 올린 것 외에도, 1400여 개에 이르는 일반의약품을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담배 부담금을 신설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으로 파탄 위기에 이른 건강보험 재정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현재 국내 의료체계의 원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에 있다. 고비용의 첨단 장비가 병원에 속속 도입되는 상태에서, 고비용인 서양의료를 구조조정해봐야 고비용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전문가들도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방법은 없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기존 의료체계에 한방정책을 편입하는 것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한방은 양방에 비해 치료체계의 원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부작용도 적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한약은 고가의 보약으로 인식되어 왔다. 원재료비가 5만원에 불과한 십전대보탕의 판매가가 15만∼20만원이나 되는 등 특권층만이 음용하는 약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중국은 양방과 한방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체계를 발전시킴으로써 비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를 만들었다. 이는 중의사, 중약사가 각자의 분야에서 한방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응용하도록 법적으로 뒷받침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한약을 저렴하고 안전하게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 1994년 한약사 제도를 신설해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약사 제도 정착을 위한 정부의 법안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한의원에서는 처방전이 외부로 발급되지 않는데도 한약사들은 처방전에 의해 조제하게 되어 있어 한약사의 조제권은 실질적으로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또한 일반인이 신고만으로 개업할 수 있는 건강원도 안전성이 확보된 49종의 한약재를 자유롭게 첨가할 수 있지만, 한약사는 약국에서 행하는 모든 가감행위를 불법으로 취급받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의 결과로 경희대 한약학과 졸업생의 경우 한약사 면허 사용자가 20%에 불과하다. 이는 한약사 제도를 1993년 한약 분쟁 당시의 이권집단간 중재안으로만 인식해온 정부의 무사안일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무원칙한 한방정책의 소산으로 학생들이 희생되고 있는 현실은 한약학과 교수의 입장에서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한약사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첨단 의료장비로 말미암아 높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기존 의료체계 안에서는 상승하는 보험료를 따라잡을 수 없다. 땜질식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대책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고유의 한방의료 체계를 기존 의료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홍선표(경희대 교수·한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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