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스타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장환수의 수(數)포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24일 1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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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추신수 오승환의 활약을 계기로 본 스포츠 스타 황금세대

사상 첫 40대 타격왕에 도전하는 이대호. 스포츠동아DB
사상 첫 40대 타격왕에 도전하는 이대호. 스포츠동아DB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올해 국민 평균 연령은 43.9세다. 2000년(33.1세)보다 10.8세가 높아졌다. 1970년(23.6세)에 비하면 거의 두 배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국민 건강이 증진된 덕분일까. 스포츠계에도 40대 바람이 분다. 프로야구에선 이대호(롯데), 추신수(SSG), 오승환(삼성)의 불혹 삼총사가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운동선수 마흔은 일반인 환갑 나이. 하지만 이들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스포츠계에는 동기생 스타가 유난히 몰려 있는 황금세대가 있다. 같이 학교를 다녔거나, 대회에 나갔거나, 누군가의 영향을 받으면서 서로 경쟁한 세대다. 야구에선 1958년 개띠가 원조다. 최동원 김시진 김용남은 올드 팬들에겐 설명이 필요 없는 국보투수 삼총사. 이만수는 프로 첫 타격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이다. 김성한은 유일하게 프로 홈런왕과 10승 투수를 겸했다. 이들은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우승 주역이다.

다양한 포지션과 물량에선 81학번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선동열이 있다. 이순철 정상흠 이종두 박흥식 박동수 한영준 윤덕규 김용국 구천서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상군 이강돈 강정길은 한 학번 아래지만 동갑내기인 한희민과 함께 1986년 빙그레 창단 멤버로서 단기간에 팀을 강팀으로 탈바꿈시켰다. 선동열은 고려대 2학년 때인 1982년 서울 세계선수권 MVP에 올랐다. 이들은 야구가 처음 올림픽 무대에 등장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주축이었다.

●야구에선 이후 약 10년 주기로 황금세대가 등장한다. 92학번은 해외 진출의 물꼬를 텄다. 박찬호 조성민 임선동의 투수 트로이카는 각각 미국 일본 국내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손경수 차명주 손혁 전병호에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뛰어든 동기생 정민철 염종석 안병원까지 가히 투수왕국이라 할 만하다. 타자로는 박재홍을 필두로 박종호 송지만 이영우 최기문 김종국 홍원기 등이 있다. 김종국은 KIA, 홍원기는 키움 감독이다. 이들은 1994년 니카라과 세계선수권 준우승 주역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불혹 트리오가 속한 프로야구 원년둥이들이 있다. 1982년 개띠인 이들은 에드먼턴 키즈로도 불린다. 이대호 추신수 김태균 클린업 트리오와 정근우 이동현 정상호 등은 고교 3학년 때인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 세계청소년선수권을 제패하면서 급성장했다. 대표팀은 아니었지만 역대 마무리 투톱인 오승환 손승락과 김강민 채태인 등도 동기생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2016년 시즌을 마친 뒤 귀국한 이대호 추신수 오승환(오른쪽부터)이 한 출간 기념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로야구 원년둥이인 이들은 불혹이 된 올시즌에도 여전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스포츠동아DB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2016년 시즌을 마친 뒤 귀국한 이대호 추신수 오승환(오른쪽부터)이 한 출간 기념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로야구 원년둥이인 이들은 불혹이 된 올시즌에도 여전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스포츠동아DB
●82년생 가운데 이대호 추신수 오승환과 김강민(SSG)은 아직 현역이다. 이대호는 올해 활약만 놓고 봐도 리그 최정상급이다. 23일 현재 타격 2위(0.369), 안타 2위(58개), 홈런 10위(6개), 출루율 4위(0.409), 장타율 10위(0.510). 7관왕 출신인 그가 아닌 다른 선수라면 몬스터 시즌이라 할 만하다. 사상 첫 40대 타격왕이 먼 꿈은 아니다. 그는 시즌 개막 직전 은퇴 선언을 일찌감치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도록 주위에서 놔둘지 흥미롭다.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가 초읽기에 들어간 오승환. 스포츠동아DB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가 초읽기에 들어간 오승환. 스포츠동아DB
오승환은 11세이브(2승 무패)로 이 부문 4위다. 19일 대전 한화전에선 사상 첫 통산 350세이브를 달성했다. 평균자책 2.33으로 예전에 비해 높지만 공의 위력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국내 400세이브와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미국 42, 일본 80세이브)에 도전하는데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 시간만이 변수일 뿐이다.

타율은 떨어졌지만 4할대 출루율로 팀의 선두 질주를 이끌고 있는 추신수. 스포츠동아DB
타율은 떨어졌지만 4할대 출루율로 팀의 선두 질주를 이끌고 있는 추신수. 스포츠동아DB
●추신수는 드러난 성적만 놓고 보면 의문부호가 붙는다. 지난해 최고령 20홈런-20도루 기록을 세웠지만 올해 타율은 0.224로 떨어지고, 4홈런-4도루로 주춤하고 있다. 하지만 출루머신이란 별명답게 출루율 9위(0.401)에 올라 있다. 타율이 0.125가 높은 이대호와 출루율에선 0.008 차이밖에 안 난다. 올해 선두를 질주 중인 SSG은 추신수의 영향 때문인지 상대 투수가 가장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구단 중 하나가 됐다. 김원형 감독은 올해 그를 붙박이 1번 타순에 배치했다. 추신수의 팀 동료인 김강민은 풀타임은 아니지만 타율 0.295에 여전히 최고 수준의 외야수비로 밥값을 해내고 있다.

●프로야구에선 40세 이후에도 1군 경기를 뛴 선수가 25명 남짓 된다. 이 가운데 이대호 오승환 추신수처럼 풀타임 활약을 한 선수는 송진우 최영필 이승엽밖에 없다. 이승엽은 불혹인 2016년에도 홈런 27개(8위)를 치고, 타점 118개(6위)를 올렸다. 투수 최고령 기록을 싹쓸이하고 있는 송진우는 선발로서, 최영필은 중간계투로서 제몫을 했다.

국내에선 야구를 제외하면 40대 프로 선수가 맹활약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비교적 선수 생명이 긴 골프에선 최경주가 41세이던 2011년 제5의 메이저대회라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스컵에서 우승한 게 눈길이 간다. 미국프로골프 통산 상금 3268만 달러로 29위에 올라 있는 그는 51세이던 지난해에는 시니어 대회인 챔피언스 투어에서 한국인으로 첫 우승했다. 이봉주는 39세이던 2009년 은퇴 경기인 전국체전 마라톤에서 우승하며 41번째 풀코스 완주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해외에서 40대 선수 활약은 이제 기사거리도 아니다. 천재 쿼터백 톰 브래디는 44세이던 지난해 만년 하위팀 탬파베이를 미국프로풋볼 정상으로 이끌며 통산 5번째 슈퍼볼 MVP에 올랐다. 타이거 우즈 역시 44세이던 2019년 미국프로골프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15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했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데러는 41세인 올해 여전히 세계 정상급이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역시 41세인 올해 AC 밀란이 이탈리아 세리에A 2021~22시즌 우승컵을 11년 만에 차지하는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황금세대로 다시 돌아가면 농구에는 82학번 스타가 많다. 전창진 유재학는 현역 사령탑이며 정덕화 추일승 한기범 이상윤 등이 있다. 유재학은 전창진과 초등학교-중학교 동창, 정덕화와는 대학-실업 동료다. 86학번은 강동희 유도훈 강양택 김광 임근배 등이 있다. 연세대 트리오인 유도훈 강양택 김광은 4학년이던 1989년 전국대회 4관왕을 차지했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 세대로 불리는 92학번은 우지원 전희철 김병철 김훈 석주일 박준영 등이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다.

●골프에선 세리 키즈가 유명하다. 1998년 박세리가 US오픈에서 맨발 투혼으로 우승한 것을 보고 자란 이들은 무서운 속도로 한국여자골프의 세계 정복을 이뤄냈다. 87년생 최나연 박희영과 88년생 신지애 박인비 김인경, 89년생 양희영, 90년 유소연 등이 있다. 현 세계랭킹 1위 고진영과 전 1위 박성현 등은 신지애가 1년에 10승씩 올리는 것을 보고 꿈을 키운 지애 키즈라고 부를 수 있다.

빙속 삼총사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는 한국체대 07학번 동기생이다. 이승훈은 4번의 올림픽에서 금 2개, 은 3개, 동메달 1개를 따내 한국 선수 최다 메달 타이를 이뤘다. 이상화는 500m 2연패로 금 2개, 은 1개를 획득했고 모태범은 금 1개, 은 1개를 차지했다. 이들 삼총사가 따낸 올림픽 메달은 금 5개, 은 5개, 동 1개에 이른다.

황금세대는 프로화가 정착되면서 사라졌다. 선수들이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뛰어들면서 동기생 개념이 없어진 탓이다. 그러나 이 또한 좋은 일이다. 이제 선수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경쟁한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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