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비치가 거부한 주사바늘, 그동안 던진 라켓과는 다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21일 16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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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기자
김정훈 기자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세계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35·세르비아)의 성격에 대해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취재를 갔을 때였다. 우연히 조코비치의 훈련을 목격했다. 조코비치가 컨테이너로 된 실내 훈련장에 들어가 몸풀기 운동을 시작하자 주위로 팬들이 몰려들었다. 무관중으로 올림픽이 치러진 탓에 대부분이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조코비치의 반응이 의외였다. 세계랭킹 1위면 팬들의 관심이 익숙할 텐데도 주변에 사람이 몰리자 자신이 훈련하던 고무공을 창문을 향해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훈련에 집중해야하니 떠나라는 것이었다. 일부는 훈련 뒤 사인을 받으려는 듯 준비했지만 조코비치의 행동에 큰 실망감을 보이며 훈련장을 떠났다. 기자도 조코비치가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마다 라켓을 바닥에 던져 부수거나 관중석을 향해 라켓을 던지는 등의 비신사적인 행동은 잘 알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자신의 팬들을 대하는 태도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스포츠 스타는 경기력만큼 팬들의 지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일화가 떠오른 이유는 조코비치가 최근 또 다시 주변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는 행동을 한 탓이다. 조코비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한 채 호주에 입국해 호주오픈 참가를 강행하려 했다. 백신 접종은 싫지만 메이저대회 최다승 기록 등 테니스계에 새 획은 긋고 싶었던 것이다. 소송전으로 이어진 조코비치의 ‘백신 거부’ 사태는 호주연방법원 재판부가 조코비치의 입국 비자 취소를 확정하면서 일단락됐다.

문제는 그의 태도다. 조코비치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영향력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본인만을 위한 결정을 내렸다. 호주연방법원 재판부가 호주정부의 손을 들어준 이유도 조코비치의 입국 허가를 해줄 경우 백신 접종 반대 정서를 부추길 위험이 있어서였다. 백신 접종 거부는 개인의 자유지만 백신 접종은 전 세계 인류의 보편적 차원에서 더 이익이 크다는 것이다.

조코비치는 향후 많은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해있다. 호주에서 추방을 당해 향후 3년 간 입국이 거부되면 30대 중반에 접어든 조코비치는 자신이 9차례나 우승을 했던 호주오픈에 다시 출전을 하기 힘들 수도 있다. 또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서 유럽과 미국이 다시 국경을 봉쇄하고 있어 남아있는 3개 메이저대회(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 출전도 불투명하다.

그동안 조코비치는 오직 자신의 승리를 위해서 팬이든, 심판이든 모든 변수를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했다. 하지만 최소한 전 세계 인류가 합심해 벗어나려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만큼은 자신의 이익을 앞세워서는 안된다. 이번만큼은 조코비치 본인이 던져버린 주사 바늘이 본인에게 비수를 꽂았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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