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팀 찾아 구슬땀 고효준, “진짜 마지막이라는 각오로”[김배중 기자의 핫코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1일 13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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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이 하는 인스타그램에 공 던지는 영상이라도 올려야겠어요. 하하.”

최근 제주 서귀포 강창학 야구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고효준(38)은 “몸 상태는 자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2020시즌이 끝난 지난해 11월 그는 소속팀 롯데에서 장원삼(38) 등 베테랑들과 함께 방출 칼바람을 맞았다. 한국나이 마흔을 코앞에 둔 나이라 은퇴를 고려해볼 만도 했지만 아직도 시속 140km 이상의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녹슬지 않은 팔이 그의 은퇴를 막아 세웠다.

11일 제주 서귀포 강창학 야구장에 마련된 프로야구선수협회 트레이닝캠프에 참가해 새 시즌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고효준. 고효준 제공
11일 제주 서귀포 강창학 야구장에 마련된 프로야구선수협회 트레이닝캠프에 참가해 새 시즌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고효준. 고효준 제공
아쉽게 끝난 2020시즌도 유니폼을 선뜻 벗기 힘들게 한 이유다. 2019시즌 이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고효준은 원 소속팀이던 롯데와 오랜 줄다리기를 하다 지난해 3월 중순에야 계약을 맺었다. 평소 같았으면 시즌 개막을 약 2주 앞둔 꽤 늦은 시기. 협상 장기전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비 시즌 중 홀로 ‘벽치기’를 하는 등 외롭게 시즌을 준비하는 도중 고효준이 은퇴한다는 가짜뉴스까지 돌아 적잖이 마음고생도 해야 했다.

준비과정이 뒤숭숭했고 시즌 최종 성적은 24경기 15와 3분의 2이닝 1승 무패 평균자책점 5.74였다. 불과 한 시즌 전(2019년) 144경기의 절반이 넘는 75경기에 나서 원 없이 공을 던졌던 모습(62와 3분의 1이닝 2승 7패 15홀드 평균자책점 4.76)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표였다.

이번 겨울도 미래가 불투명하긴 마찬가지지만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지난달까지 부산에서 웨이트 및 러닝 훈련에 집중한 고효준은 11일부터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서귀포 강창학야구장에 문을 연 트레이닝캠프에 합류했다. 비 시즌 중 이곳에서 재능기부를 하러 온 프로구단 트레이너들의 지도 하에 좀 더 체계적으로 몸을 만들기 위해서다. 고효준은 “여러 트레이너의 노하우를 배우며 몸을 만들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이맘때보다 컨디션이 좋다는 게 느껴진다. 하프 피칭도 시작 했다”고 말했다.

하프 피칭은 투수가 힘의 절반만 사용해 공을 던지는 과정으로, 이후 불펜 투구, 타자를 세워놓고 던지는 라이브 투구 등을 거쳐 실전 경기에 나선다. 부상이 없는 고효준으로서는 곧 실전투구도 가능할 만큼 준비를 잘 했다는 의미다.

선수협 트레이닝캠프는 저연차, 저연봉 선수들을 위해 선수협이 마련한 자리로 고효준처럼 억대 연봉을 받아봤던 ‘초’고참에게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고효준도 이를 잘 안다. 그렇기에 합류 전 이곳에 재능기부를 온 한 트레이너에게 정중히 허락을 구했다. 또한 개인훈련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이곳을 찾은 젊은 선수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도 아낌없이 공유한다. 고효준은 “오른손 투수인 안현준(26·KT)과 이야기를 나누다 고교(세광고) 후배라는 걸 알게 됐다. 시속 150km의 빠른 공을 던지는 친구인데 제구가 뜻대로 안 되는 게 고민이라더라. 나도 비슷한 고민에 밤잠을 설친 때도 있었다. 심리적인 부분 등 제구불안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줬다”고 말했다.

선수협 트레이닝캠프에서 만난 고교 후배 안현준(KT·오른쪽)과 함께. 고효준 제공
선수협 트레이닝캠프에서 만난 고교 후배 안현준(KT·오른쪽)과 함께. 고효준 제공
소통이 ‘위에서 아래로’만 향하지는 않는다. 고효준은 “포수인 (유)강남(29·LG)이가 이곳에 훈련하러 와 함께 캐치볼을 한다. 강남이 미트에 내 공이 꽂힐 때마다 ‘은퇴하기 아까워요’라며 용기를 북돋아줘 나도 힐링이 된다”며 웃었다. SNS가 서툰 그가 서두에 선뜻 인스타그램 ‘셀프홍보’를 언급했던 것도 팬들과 SNS로 활발히 소통하는 젊은 선수들의 영향이 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각 구단이 허리띠를 조이고 있어 노장인 고효준에게 손을 내미는 구단은 아직 없다. 고효준도 “아직 FA 중 이름값 있는 몇몇 친구들조차 계약을 못했다. 그 선수들이 팀을 찾아야 그나마 순번이 올 것 같다”고 진단한다. 지난해의 ‘경험’도 고효준에게 위안이 되는 요소 중 하나다. 스토브리그 초반만 해도 고효준을 전력 외로 봤던 롯데는 스프링캠프 막바지로 접어들며 구상이 조금씩 틀어지자 고효준과 손을 잡았다. 노장들을 정리하며 ‘리빌딩’을 표방한 구단들 중 스프링캠프 이후 고효준 같이 경험이 풍부하고 여전히 경쟁력 있는 구속을 가진 선수가 필요해지는 곳이 생길 수 있다.

“마운드에 오를 기회만 주어진다면 돈 이런 건 상관없습니다. 진짜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마운드에서 남은 힘을 쏟고 싶어요. ‘그날’을 위해 매일 열심히 몸을 만들겠습니다.”

P.S: 기사가 올라간 후 약 한 시간 뒤 고효준 선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hyojun.go)에 투구 영상을 올렸습니다. 고효준 선수께 좋은 소식이 전달되길 기원합니다.

김배중 기자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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