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명관이가 달라졌어요[발리볼 비키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0일 11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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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김명관.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현대캐피탈 김명관.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경기대에 키 195cm짜리 세터가 있어요. 제 마음대로 뽑을 수만 있다면 당연히 그 세터인데 그럴 수 없어서 고민 중입니다.”

프로배구 2019~2020 남자부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있던 어느 여름날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한 삼겹살집에서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과 우연히 합석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 저는 배구 담당 기자가 아니었는데 공교롭게 같은 가게에 최 감독도 저녁 식사를 하러 왔던 겁니다.)

그 키 195cm짜리 세터는 김명관(24)이었고 최 감독 예상대로 당시 드래프트 때 전체 1순위로 한국전력에서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스포츠 팬이라면 ‘유망주는 유망주일 뿐’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압니다. 학창 시절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막상 프로 무대 진출 후에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선수가 한둘이 아닙니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과 김명관.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과 김명관.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데뷔 시즌 김명관 역시 리그 최고 신인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던 게 사실. 지난해 11월 13일 최 감독이 트레이드를 통해 기어이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힌 뒤에도 김명관이라는 이름 석 자 뒤에는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더 많이 따라다녔습니다.

실제로 김명관은 한국전력에서 뛴 1라운드 때 세트(토스) 효율 0.314로 남자부 7개 팀 주전 세터 가운데 가장 나쁜 기록을 남겼고 2라운드 때(0.311)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라운드 때도 김명관(0.383)보다 세트 효율이 떨어지는 선수는 삼성화재 이승원(0.357) 하나뿐이었습니다. (세트 효율 = 해당 선수 세트 시 공격 효율)

그랬던 김명관이 달라졌습니다. 4라운드 네 경기에서 김명관은 세트 효율 0.413으로 대한항공 한선수(0.415)급 활약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4라운드 들어 김명관보다 확실히 세트 효율이 높다고 평가할 수 있는 선수는 우리카드 하승우(0.472) 한 명뿐입니다.

무엇보다 상대 블로커와 ‘가위바위보’를 하는 솜씨가 좋아졌습니다. 국제배구연맹(FIVB)에서는 세터 순위를 매길 때 상대 블로커 숫자를 따집니다. 상대 블로커가 없거나 1명일 때를 따로 ‘러닝 세트’라고 기록하고 이 러닝 세트가 많을수록 좋은 세터라고 평가하는 겁니다.

한국배구연맹(KOVO)에서도 상대 블로커 숫자를 집계합니다. 이번 시즌 남자부에서 상대 블로커가 없거나 1명일 때 공격 효율은 0.401로 2명 또는 3명일 때(0.308)보다 0.100 가까이 높습니다. 따라서 상대 블로킹을 잘 ‘열어주는’ 세터가 좋은 세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막전에서 러닝 세트 비율 13.3%를 기록한 김명관은 한국전력 시절 좀처럼 이 비율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로 이적한 뒤로는 러닝 세트 비율이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현대캐피탈 이적 이후만 따지면 김명관은 러닝 세트 비율 37.5%로 KB손해보험 황택의(40.9%)에 이어 주전 세터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러닝 세트 비율은 팀 서브 리시브 효율과 큰 관계가 없습니다. 당장 KB손해보험은 리시브 효율 31%로 리그 최하위지만 황택의가 이 비율 1위입니다.)
김명관이 이렇게 상대 블로킹을 잘 열게 된 건 공격 옵션 선택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전력 시절 김명관은 오픈과 백어택 등 ‘큰 공격’ 의존도가 높은 세터였습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 이적 이후에는 속공과 퀵오픈 같은 ‘빠른 공격’을 선택하는 비율이 늘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 프로 스포츠 세계에 ‘리빌딩’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건 드래프트 제도 때문입니다. 상위권을 오래 지킨 팀은 드래프트 순번이 밀리다 보니 좋은 유망주를 뽑기가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아 인위적으로 선수단 물갈이를 해야만 하는 것.

그런 점에서 최 감독 표현처럼 ‘리그 넘버1 센터’ 신영석(35)을 내주는 대신 받아온 2019~2020 신인 드래프트 1순위 김명관이야 말로 현대캐피탈 리빌딩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캐피탈이 리빌딩을 끝내는 그 시점에 우리는 김명관을 어떤 세터로 평가하고 있을까요?

그에 앞서 김명관은 당장 20일 경기에서 우리카드를 상대로 자기 실력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 경기에서 이기면 김명관은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3연승을 경험하게 됩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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