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현충원 ‘국수 공양’… “따스한 한 그릇 대접하고 싶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7일 15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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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인 6일 오전 8시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관 앞. 순국선열 유족 등 참배객들이 임시로 설치된 텐트 앞에서 길게 줄을 이어가고 있었다. 참배객들은 분홍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나눠주는 국수와 주먹밥 등을 받아 다른 텐트 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넓은 그릇에 푸짐하게 담겨진 국수, 그리고 김치와 다시마로 꾸며진 지단과 따스한 국물은 얼핏 봐도 웬만한 분식집 잔치국수에 버금간다.

이곳과 근처 경찰묘역에서 이날 무료 국수 등을 제공한 곳은 현충원에서만 15년째, 지역사회에서 30년 째 ‘국수공양’을 해온 대전 유성구 구암사(주지 북천스님) 신도들로 구성된 나눔봉사단.

북천스님을 비롯해 자원봉사자 300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이날 현충원을 찾은 유족 등 1만여 명에게 국수와 주먹밥 5000명 분, 아이스크림 1만 명 분, 솜사탕과 부침개 3000명 분을 제공했다.

6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순국선열 유족 및 참배객들이 구암사 측에서 마련한 국수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6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순국선열 유족 및 참배객들이 구암사 측에서 마련한 국수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구암사 신도들이 현충원에서 국수 공양을 해 온 것은 벌써 15년째다. 북천스님은 “2010년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았다가 군 복무 중 사망한 아들은 묻은 뒤 납덩이처럼 굳은 표정으로 밥 한 끼 먹지 못한 채 되돌아가는 가족들을 보면 충격을 받았다”며 “따스한 국수 한 그릇만이라도 대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구암사 측은 신도회의를 거쳐 현충원에서 국수봉사를 하기로 했다. 신도들은 이때부터 가건물을 지어 매일 교대로 현충원을 찾는 하루 평균 400여 명에게 국수를 제공했다. 지금까지 15년째다. 봉사자들의 직업도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 언론인 등 전문직에서부터 택시운전기사, 자영업, 가정주부 등 다양하다. 번듯한 조리실도 지었다.

북천 스님은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해제된 상황에서 현충일을 맞게 돼 마음이 한결 가볍다”라며 “보훈의 의미를 담아 유족이나 참배객들을 위해 작은 정성이나마 위로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대전 유성구 구암사 주지 북천스님.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대전 유성구 구암사 주지 북천스님.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이날 행사에는 이장우 대전시장과 이상민 국회의원, 신도회장인 이두식 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대전지역 기관장들도 손을 보탰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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