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기업에 인센티브 검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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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열 상생임금委 공동위원장
“개혁 미루면 다음 세대 재난 될것”
10월 임금 개편 로드맵 발표 예정

“한국의 임금체계는 ‘지속 가능성’에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처럼 오랜 기간 문제가 쌓여 터져 버린, 일종의 ‘축적된 재난’이라고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상생(相生)임금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현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을 이끌고 있는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사진)는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교수연구실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첫 언론 인터뷰에서 호봉제 중심의 기존 임금체계를 ‘재난’에 빗댔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근속연수 중심의 호봉제를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임금체계를 바꾸는 기업들에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생위는 정부 노동개혁 정책의 양대 축인 근로시간 개편과 임금체계 개편 중 후자를 맡고 있다. 먼저 추진된 근로시간 개편이 ‘주당 최대 69시간 근로’ 논란에 휩싸이면서 임금체계 개편에도 우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 위원장은 “현 임금체계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며 “개혁을 미루면 현 세대는 괜찮을지 몰라도 다음 세대에는 기업이 사람을 고용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출범한 상생위는 이달 31일 3차 회의를 열고, 10월에 ‘임금 개편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근로시간 개편 핵심은 생산성… 정규-비정규직 임금차 줄여야”


상생임금위원장 인터뷰


최대 근로시간 논쟁은 본질과 무관… 한국 노동생산성, 美의 58% 수준
비정규직, 같은 일하고 40%만 받아… 中企 근로자부터 임금개편 시작해야







고용노동부 산하 상생임금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23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은 정년이 지나도 
얼마든 팔팔하게 일할 수 있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의 일자리와 임금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호봉제는 
상극”이라고 지적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고용노동부 산하 상생임금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23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은 정년이 지나도 얼마든 팔팔하게 일할 수 있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의 일자리와 임금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호봉제는 상극”이라고 지적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재열 상생임금위원장은 임금체계 개편 문제에 앞서 최근 논란이 진행 중인 근로시간 개편안을 지적하며 “핵심은 시간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인데 본질과 무관한 논쟁만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근로시간의 변화를 모색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근로자에게 더 장시간 일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에 주어진 일을 제때 처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이 위원장의 지적이다.

● “근로시간 개편은 노동생산성 높이기가 핵심”

앞서 6일 고용노동부는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69시간으로 늘리는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한 반발에 직면했다. 이후 고용부와 윤석열 대통령이 개편안에 잇달아 서로 다른 메시지를 내놓으며 혼란에 휩싸였다.

이 위원장은 현재 한국의 근로시간을 “낮은 강도로 천천히, 오래 일하는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과거 한국의 수출 경쟁력은 낮은 임금에서 나왔고 정부는 임금 인상을 규제했다”며 “근로자 입장에서 총소득을 늘리는 방법은 야근, 특근, 주말 근무 등을 마다하지 않고 장시간 일해서 수당을 더 받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정부 국가지표체계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2.7달러(약 5만5600원)다. 미국(74.1달러)의 58%, 독일(68.3달러)의 63%, 프랑스(66.7달러)의 64%에 불과하다. 이 위원장은 “근로시간 개편 논의는 반드시 노동생산성 향상 방안과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은 반상 차별”

상생위가 논의 중인 임금 체계와 관련해서는 ‘이중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이 위원장은 지적했다. 이중 구조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등에서 근로자가 겪는 임금과 처우의 격차를 말한다. 이 양극화는 현재 한국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동시에 저출산, 결혼 포기 등 다양한 사회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위원장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세계화 등을 거치면서 국내 임금 체계에서 심각한 이중구조 문제가 고착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해도 대기업 정규직 소속 근로자가 연봉을 100을 받는다 치면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근로자는 40밖에 못 받는다”며 “같은 일을 하는데 소속과 직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이 조선시대 양반과 상민을 차별하던 ‘반상(班常) 차별’과 똑같은 신분 차별 구조 아닌가? 이것이 공정할까”라고 되물으며 “양측의 임금 격차를 줄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일부 MZ세대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과 서울교통공사 노조는 2021년 비정규직의 직접 고용에 반대했고, 2020년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젊은 직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나섰다. 노력해 얻은 정규직에 대한 역차별이란 불만이었다.

이 위원장은 “MZ가 말하는 공정(公正)의 개념은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은 정규직이라는 신분을 순수하게 자신들의 노력으로 쟁취했다고 여긴다”며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부모의 경제력, 교육 환경의 차이, 부의 불균형 등 배경과 행운이 작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이를 ‘공정이라는 착각’으로 표현했는데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 “과도한 정규직 보호가 되레 毒”

이 위원장은 한국이 정규직을 보호하려다 오히려 정규직 채용을 못 늘리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용자 입장에선 해고가 매우 어렵다. 고용 유연성이 ‘제로(0)’ 수준이 된 이유”라며 “이 때문에 100명의 인력이 필요해도 50명만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나머지는 완충지대(비정규직)로 둔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용자는 정규직 50명에게 100명분의 일을 시키거나, 나머지 50명을 계약직으로 채워 2년만 쓰고 해고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네덜란드 등 선진국은 고용 유연성과 근로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다고 이 위원장은 제시했다. 기업에는 자유로운 고용, 해고의 자유를 부여하되 실직자들이 재취업을 모색할 수 있도록 연금 등 사회안전망을 탄탄하게 구축한 곳들이다. 이 위원장은 “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 직역연금, 실업급여 등으로 흩어진 연금과 복지 제도를 하나로 통합해 두툼한 사회 안전망을 깔아야 한다”고 말했다.

● “中企 임금 체계부터 바꿔야… 인센티브 고민”

상생위의 논의는 시작 단계지만 이 위원장은 “연차가 쌓이면 자동으로 월급이 오르는 연공서열 중심의 호봉제는 지금의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맞지 않는다.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늘어난 고령 인구의 고용을 유지할 경우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고 청년들은 일자리 부족을 겪을 수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사이의 차별과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실제 하는 일과 능력 중심으로 임금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고 이 위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법과 제도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근로 약자’를 대상으로 먼저 임금 개편이 시작돼야 한다는 소신도 밝혔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99.9%는 중소기업이고, 전체 근로자의 81.3%는 중소기업 근로자다. 이 위원장은 “대기업, 정규직, 원청이란 울타리로 보호받는 상위 18%의 ‘1부 리그’보다는 80%가 넘는 ‘2부 리그’(중소기업, 비정규직, 하청)의 임금 체계를 먼저 바꿔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세한 중소기업은 근로시간이나 임금 체계에 대해 무지(無知)하기도 하고 관리 역량이 없기도 하다”며 “임금 체계를 바꾸는 기업에 정부가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상생위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인센티브 검토#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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