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 기부, ‘1000만 영화’ 달성만큼 기분 좋아요” [따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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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2월 2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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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보사 ‘퍼스트룩’ 이윤정·강효미 대표

(왼쪽부터) 영화 홍보사 ‘퍼스트룩’ 강효미, 이윤정 대표. 사진=사랑의열매제공
(왼쪽부터) 영화 홍보사 ‘퍼스트룩’ 강효미, 이윤정 대표. 사진=사랑의열매제공
“1억 원 기부, 살면서 가장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2020년 1월에 시작해 지난해 12월까지 약 3년간 1억 원 기부를 달성한 이윤정(46)·강효미(45) 영화 홍보사 퍼스트룩 공동대표는 무척 담담히 소감을 전했다. 누군가는 ‘돈이 아깝지 않냐’고 했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일부를 나눴을 뿐,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1시간 남짓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들이 기부에 거리낌이 없는 이유는 타고난 천성 같았다. 어릴 적부터 나눠주는 것에 익숙했다. 특히 교사셨던 강 대표의 아버지는 연말이 되면 ‘사랑의열매’ 배지를 가지고 오셨다. 처음엔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그 의미를 알게 되면서 기부를 시작했다.

2005년 의기투합해 ‘퍼스트룩’을 차리면서 두 사람은 회사 이름으로 틈틈이 수재민 성금이나 동물 복지, 소외계층 등에게 기부금을 보냈다. 처음엔 소액으로 출발했다. 그러던 중 강 대표가 이 대표에게 ‘아너 소사이어티’를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사랑의열매’)에 1억 원 이상을 낸 사람들의 모임이다. 처음에는 한 번에 내야 하는 줄 알고 선뜻 나서지 못했지만 5년 안에만 내면 된다는 말을 듣고 바로 가입했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정말 특별한 계기가 없어요. 그냥 하는 겁니다.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어요.” (강효미)

“작년 크리스마스에 마지막 기부금을 보냈어요. 성탄절에 다들 선물을 주고받잖아요. 저도 이웃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마음으로 송금 버튼을 눌렀죠.” (이윤정)

이 대표는 ‘계기’를 굳이 꼽자면 그동안 받은 도움과 관심에 대한 환원이라고 했다. 그는 “영화가 좋아서 차린 회사였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했다”며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나 혼자 한 게 아무것도 없더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부를 시작하며 두 사람은 내야 할 돈만 잘 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부처에서 주관하는 토론회 등을 참석해보니 다른 지원 방법도 고민하게 됐다. 강 대표는 “영화 일을 하는 꿈을 이룬 나로선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꿈도 꾸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사랑의열매’ 안에 있는 ‘청청모’(청년을 돕는 청년들의 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청년들이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건 사회적 손실이라는 생각도 든다”며 “그들이 중도에 하차하는 일이 없도록 이러한 일에 동참하게 됐다”고 전했다.

‘청청모’는 2년 전부터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에 기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회원들이 기업들의 사업 발표를 듣고 취지에 걸맞은 사업에 3년간 재정을 지원해주고 있다.

이번에는 좁은 방 안에 자신을 가둔 ‘은둔청년’, 가정폭력이나 경제적 여건으로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탈가정 청년’, 그리고 성인이 돼 보육원 등 시설에서 나가야 하는 ‘자립준비청년’을 도와주는 기업이 선정됐다.

이같은 활동을 하며 두 대표는 탈가정 청년들의 모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한 모임에서 만난 김현준 군(가명·10대)은 부모와의 갈등으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된 게 다 내 잘못 같다. 다른 사람들한테 가족들 이야기를 하면 ‘네 잘못이다’ ‘네가 더 잘하지 그랬냐’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학생은 말을 마치며 “살면서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게 처음이다. 정말 고맙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이 모임으로 우울증이 나아졌다는 청년도 있었다.

두 사람은 그날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다고 말했다. 위로의 말도 필요 없었다. 그들의 마음속 응어리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이후에도 비슷한 모임이 있으면 가능한 한 참석하려고 한다고도 했다.

이 대표와 강 대표가 이끄는 ‘퍼스트룩’은 영화 ‘도둑들’, ‘베테랑’, ‘변호인’, ‘명량’, ‘광해 : 왕이 된 남자들’ 등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이끈 작품들을 홍보한 회사다. 최근에는 영화 ‘브로커’, ‘헤어질 결심’, ‘영웅’ 등을 맡기도 했다.

1억 원 이상 기부해 받은 ‘아너 소사이어티’ 인증패. 사진=본인제공
1억 원 이상 기부해 받은 ‘아너 소사이어티’ 인증패. 사진=본인제공

자신들의 회사가 홍보한 영화가 좋은 성과를 내면 기분이 좋은 건 당연지사다. 은근슬쩍 ‘영화 관객 1000만 달성과 1억 기부 중 무엇이 더 뿌듯하냐’고 물어봤다. 웃으면서도 곰곰이 생각한 두 대표는 “느끼는 쾌감은 다르지만 뿌듯함은 비슷한 것 같다”고 답했다.

“관객들에게 영화로 즐거움을 주는 일과 사람들을 도와주는 즐거움은 비슷한 것 같아요. 관객들이 남기는 ‘재미있다’ ‘위로받았다’는 감상평을 보면 굉장히 보람돼요. 기부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면에선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윤정)

강 대표는 누군가를 돕는 것을 대단히 거창한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누가 몇억을 냈다’는 기사를 보며 기부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청년들에게 3000원짜리 김치찌개를 파신다는 ‘청년밥상 문간’ 이문수 신부님의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청년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마음부터 시작하신다면 여러분도 훌륭한 ‘기부자’가 되실 거예요.”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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