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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인사이드&인사이트]재개발-재건축 ‘계륵’ 된 학교용지… 조성 놓고 잦은 실랑이

입력 2022-11-21 03:00업데이트 2022-11-2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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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용지에 발목 잡힌 주택공급
최근 단지 내 초등학교 이전 문제로 재건축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전경. 동아일보DB
《 ‘초품아.’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라는 뜻이다. 자녀 통학을 우선순위로 둔 학부모를 겨냥해 건설사들이 신규 분양 단지 광고에 자주 등장시키는 단어다. 하지만 정작 재개발, 재건축 사업 현장에서 학교용지는 ‘계륵’ 같은 존재다. 학교를 지을지 말지, 정비계획이 교육 환경을 해치지는 않는지를 놓고 인근 학교와 조합, 교육청이 실랑이를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업 자체가 난항에 빠지며 신규 주택 공급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심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학교나 교육청이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축복 산업2부 기자
올해 2월 정비계획 인가를 받은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조합은 몇 달째 단지 내 신천초 이전 문제로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학교 일조권 규정상 현재 위치에 신천초를 남겨두면 인근 건물을 저층으로 지어야 해 당초 조합이 계획했던 대로 주택을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초 조합은 수년간 협의 끝에 단지 내 일조권 문제가 적은 땅에 초등학교 2곳과 중학교 1곳을 새로 짓고 이를 신천초 땅과 맞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천초 땅이 서울시교육청이 아닌 교육부 소유 국유지인 점이 문제가 됐다. 관할 교육청과 기획재정부가 현행법상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재산을 지을 때는 사유지를 국유지와 교환할 수 있지만, 지방교육청이 관리하는 학교를 지을 때는 교환할 수 없다고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협의가 불발되면 조합 또는 교육청에서 신천초 땅을 사들여야 해 재건축 비용은 더 늘어난다. 신천초를 그대로 두면 단지 내 50층 높이 주상복합이 신천초 일조권을 침해해 정비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잠실주공5단지는 이미 4년가량 학교 문제로 실랑이를 벌여 왔는데 또다시 교육청과 기재부가 발목을 잡고 있다”며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부 기조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체육관 지어 달라” “건물 개축해 달라” 저마다 다른 요구

현행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주택 개발 사업을 시행하려면 학교용지 조성 계획을 수립해 교육청과 협의해야 한다. 초등학교는 4000채 이상일 때, 중학교 및 고등학교는 6000채 이상일 때 짓는다. 신축 대신 기존 학교를 리모델링하는 비용을 내기도 한다. 실제로 강동구 고덕2단지(고덕 그라시움)는 강덕초 리모델링 등 학교 관련 비용으로 124억 원을, 송파구 가락시영(헬리오시티)은 가락초 리모델링 등에 30억 원을 부담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교육청과 조합 간 협의는 재건축 밑그림인 정비계획을 수립할 때와 구체적인 가구 수, 건축계획 등 사업시행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 받는 교육환경영향평가 등 2차례 이뤄진다. 이 중 교육환경영향평가는 2017년 2월 도입된 제도로 정비사업이 학생 수, 학교 환경, 안전 등 교육환경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심의제도다. 사업지로부터 반경 200m 이내에 학교가 있는 정비사업이라면 관할 교육청에서 교육환경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학교 자체가 중요한 인프라인 만큼 조합도 학교를 짓거나 인근 학교를 리모델링하는 비용을 치르는 일 자체에는 보통 이견이 없다. 문제는 교육청이나 학교 측이 기존 협의를 번복하거나 명확한 기준 없이 무리한 요구를 해 사업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생긴다는 점이다.

성동구 응봉1구역 단독주택 재건축 조합은 올 8월 교육청으로부터 기존에 짓기로 한 사회복지시설 부지에 체육관, 도서관 등 인근 초등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연계 시설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기부채납 계획을 세운 데다가 이를 변경하려면 행정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사업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환경영향평가 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인근 학교와의 협의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학교 측이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조합이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디에이치 클래스트)는 재건축을 추진하며 인근 학교로부터 “4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이고 신축 아파트와 괴리돼 기피 학교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교사들이 쓰는 건물을 개축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미 학교용지로 4740억 원 규모 땅을 기부채납한 상황이었지만 원활한 협의를 위해 개축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했다.
○ 학령인구 감소에 “학교 짓지 말라” 번복하기도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학교를 지을지 여부를 두고 교육청이 기존 입장을 번복하는 사례도 나온다. 은평구 응암2구역(녹번역e편한세상캐슬) 재개발 조합은 2008년 정비구역 지정 당시 서부지원청으로부터 학교용지를 마련해 달라는 의견을 받았다. 하지만 2015년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이를 해제해 달라는 정반대 요청을 받았다. 결국 조합은 학교용지에 아파트를 추가로 지었는데, 이 과정에서 조합원 보상액 등을 다시 수립해야 해 사업이 지연됐다.

올 7월 착공한 서초구 방배5구역(디에이치 방배) 재건축 사업은 아파트 29개 동, 총 3065채를 짓는 사업으로, 조합은 당초 단지 내에 초등학교를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조합에 따르면 최근 관할인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서 “학생 유발률이 적어 교육부로부터 승인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을 구두로 전달받은 상태다. 교육지원청 측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새로 유입되는 학생이 많지 않아 인근 학교로 분산 배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이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약 교육지원청이 학교를 짓지 못하겠다고 할 경우 기존 학교용지를 다른 기부채납 시설로 변경하는 등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학교와 조합 간 협의를 중재하고, 한번 이뤄진 협의는 특별한 사유 없이는 번복할 수 없도록 강제성을 두는 등 현행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변호사는 “교육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인근 학교들이 학교 시설물인 에어컨, TV 등을 교체해 달라고 하거나 후원금을 요청하기도 한다”며 “이 과정에서 협의가 교착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청이 학교용지를 요구하거나 조합의 신설 요구를 거부할 때 학령인구를 어떻게 판단했는지가 명확하지 않은 점도 문제점이다. 교육청은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로 인해 늘어나는 학생 수를 분석해 조합에 학교용지 관련 의견을 제시한다. 이는 교육청 내부 자료로 정비사업 인허가권자인 지자체장에게도 공개하지 않는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교육청이 학령인구 산정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잡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조권 침해, 소음 분진 발생 등에 따른 보상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학교 운동장에 그늘이 지니까 건물 한 동을 삭제하라는 등 분양 손실이 너무 커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는 곳도 많다”며 “주관적인 손해 보상 기준을 객관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축복 산업2부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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