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마세요” 300m 밖 내보내… 文사저 마을 105일만에 평온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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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구역 확대 첫날 평산마을
사저 300m안도 집회 가능하지만 고성-비방 땐 3회 경고뒤 이동조치
확성기 반입 막고 차량 수색도… 시위자 “집회 막는 꼼수” 반발
文, 집 밖으로 나와 1시간 산책… 주민 “매미소리 오랜만에 들어”

평산마을 입구 차량 검문   22일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도로에서 대통령 경호처 직원들이 차량을 세운 뒤 검문하고 있다. 경호처는 이날 0시부터 문 전 대통령 경호 구역을 사저 반경 100m에서 300m로 확대했다. 양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평산마을 입구 차량 검문 22일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도로에서 대통령 경호처 직원들이 차량을 세운 뒤 검문하고 있다. 경호처는 이날 0시부터 문 전 대통령 경호 구역을 사저 반경 100m에서 300m로 확대했다. 양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욕설하지 마세요. 고성 지르지 마세요. 비방하지 마세요. 3회 경고했습니다. 경호법에 따라 경호구역 밖으로 내보내겠습니다.”

22일 오전 8시 반,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사저를 향해 소리를 지르던 시위자 A 씨는 결국 경호처 관계자와 경찰에 둘러싸여 경호구역 밖으로 밀려났다. 그는 욕설과 고성으로 항의했지만 경호처 관계자의 태도는 단호했다.

이날 0시부터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구역이 사저 반경 100m에서 사저 반경 300m까지 확대됐다. 경호처와 경찰이 경호구역 내 고성·욕설·비방을 엄격하게 단속하면서 평산마을은 문 대통령 퇴임 후 105일 만에 평온을 찾았다.

○ 경호구역 확장하고 일일이 검문

이날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인 경호처 직원들의 표정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호처는 사저 진입 도로 3곳에 검문소를 설치한 경호구역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웠다. 그리고 차량과 사람들을 검문한 뒤 신분이 확인된 사람만 통행을 허가했다. 이 도로는 5월 10일 문 전 대통령이 사저에 입주한 후 집회와 시위가 매일 열리던 곳이다.

원칙적으로 경호구역 내에선 집회나 시위가 허용된다. 다만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욕설, 비방, 모욕 등의 행위로 질서를 방해하는 사람은 경호구역 밖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경호처는 이를 근거로 대형 스피커를 실은 집회 차량의 진입을 전면 통제했고, 집회를 하러 온 차량의 내부를 수색했다.

이날 양산경찰서도 경호구역 내 마을 도로(길이 50m)를 ‘완충구역’으로 정하고 펜스를 설치해 접근을 차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해가 상충되는 복수의 단체가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할 경우 충돌 우려가 있어 완충구역을 설치한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평소의 5배인 150명을 배치했다.

22일 경남 양산시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경호가 강화된 가운데 하북면 평산마을 입구에서 경호처 직원들이 유투버의 활동을 제지하고 있다. 양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22일 경남 양산시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경호가 강화된 가운데 하북면 평산마을 입구에서 경호처 직원들이 유투버의 활동을 제지하고 있다. 양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일부 시위자는 경호구역 내에서 욕설을 하며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를 못 하게 하려는 꼼수”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경호처에서 경고하자 대부분 조용해졌고 일부는 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팻말을 목에 걸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정도에 그쳤다. 보수단체 회원 B 씨는 오후 2시 반경 욕설을 하고 고성을 지르다 경호처 직원 4명에게 들려 옮겨지던 중 통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 문 전 대통령 1시간 동안 사저 주변 산책
평산마을 사저 앞 경호구역 확대 첫날인 22일 사저 앞 고성과 욕설이 사라지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오후 3시 반부터 1시간가량 마을 산책을 했다. 이웃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방문객들과 사진도 찍었다. YTN 캡처
평산마을 사저 앞 경호구역 확대 첫날인 22일 사저 앞 고성과 욕설이 사라지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오후 3시 반부터 1시간가량 마을 산책을 했다. 이웃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방문객들과 사진도 찍었다. YTN 캡처

경호구역 확대 첫날부터 경호처와 경찰이 적극 대응하면서 사저 주변에서 전날까지 소음을 일으키던 대형 스피커와 확성기는 사라졌다. 문 전 대통령을 비난한 현수막과 모형 수갑 100여 개도 모두 철거됐다.

마을이 조용해지자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반경부터 약 1시간 동안 사저 주변을 산책했고, 인근 도자기 공방을 방문했다. 부인 김정숙 여사도 사저 밖으로 나와 주변 상황을 지켜봤다.

주민들은 “매미와 새가 우는 소리를 오랜만에 듣는다”면서 “조용했던 마을로 돌아왔다”고 환영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C 씨는 “그동안 해도 해도 너무했다”면서 “골병이 들 정도로 힘들었는데, 오늘처럼 마을이 계속 조용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경호구역 확대로 상대적으로 소음 피해를 덜 봤던 마을 입구 쪽 주민들의 우려는 커졌다. 실제로 소동을 피우다가 경호구역 밖으로 밀려난 A 씨는 마을 입구 쪽에서 고성을 질렀고, 일부 유튜버들은 검문소 밖에서 인터넷 방송을 이어갔다. 주민 신한균 씨는 “보수단체들이 경호구역 밖에서 더 과격한 집회를 열까 걱정된다”고 했다. 경찰은 보수단체 회원이 많이 참여하는 이번 주말 집회에서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수위에 따른 대응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는 서울 서초구 윤석열 대통령 자택 앞에서 맞불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의 소리는 이날 24일에 마지막 집회를 하겠다고 밝혔다.


양산=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文사저#평산마을#경호구역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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