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장례뒤 보건소서 “부검했나” 물어… 유족 “화장했는데 이제 와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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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의 책임]
〈하〉백신 인과성 밝힐 ‘부검’ 안내도 안한 지자체
“왜 제때 안내 안했냐” 항의하자 보건소 “알릴 책임 없다” 말 되풀이
‘역학조사반이 보호자에 부검 권고’ 질병청 매뉴얼 현실과 동떨어져
부검 기회 놓친 유족 “너무 억울해”… 부검감정서, 정보공개 청구해야 받아

올 1월 남편 김성원 씨를 잃은 여필자 씨가 5월 31일 남편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중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안성=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올 1월 남편 김성원 씨를 잃은 여필자 씨가 5월 31일 남편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중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안성=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엄마, 보건소에서 전화 와서 아빠 부검했느냐고 묻던데?”

올 1월 19일 경기 안성시에 사는 여필자 씨(53)는 남편 김성원 씨(57)의 장례 후속 절차를 위해 경북 포항으로 내려갈 채비를 하던 중 딸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남편 김 씨는 닷새 전 숨졌고, 장례는 사흘 전 끝났다. 시신은 이미 화장돼 장지에 안장돼 있었다.

김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3차 접종을 한 지 31일 만인 올 1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진단명은 뇌출혈이었다. 앞서 경기 평택시 보건소는 김 씨의 백신 이상반응 신고를 접수했다. 그런데 뒤늦게 딸에게 연락해 “부검 여부가 사망과 백신 간 인과성 평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부검을 했느냐”고 물어온 것이다.
○ 보건소 안내 부실로 부검 못 한 사망자들

급히 평택시 보건소를 찾은 여 씨는 “왜 부검을 하라는 안내가 제때 이뤄지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다. 보건소 측은 “우리에게 알릴 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5월 31일 자택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여 씨는 “보건소 직원이 ‘계속 소리를 지르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더니 나중엔 ‘돈 때문에 그러느냐’는 폭언까지 했다”며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백신 접종 이상반응 역학조사에서 부검은 인과성 판단의 핵심 근거가 되는 필수 절차로 꼽힌다. 특히 환자가 갑자기 사망해 병원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 등에는 사실상 부검 결과 외에는 인과성을 입증할 자료가 없다.

보건소들은 안내 책임을 서로 떠넘겼다. 김 씨의 이상반응 신고를 접수한 평택시 보건소 관계자는 5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씨의 주소지는 안성시이므로 부검 안내는 안성시 보건소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안성시 보건소 관계자는 “역학조사는 입원 병원 관할 보건소에서 이뤄진다”며 평택시 보건소에 책임을 넘겼다.

취재진이 확인한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 추진단의 ‘접종 후 이상반응 시도 신속대응팀 업무 매뉴얼’은 또 달랐다. 시도 역학조사반이 보호자에게 부검 실시를 권고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이 같은 매뉴얼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많게는 수천 건의 이상반응 역학조사를 동시에 담당하는 시도 역학조사반이 직접 부검 안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응 체계의 허점 탓에 숨진 가족의 부검 기회를 놓친 유족들은 “부검 결과 없이 나온 인과성 심의 내용을 믿지 못하겠다”고 호소한다. 여 씨는 남편 사망이 ‘백신과 인과성이 없다’는 심의 결과를 올해 4월 19일 통보받았다. 여 씨는 기자에게 “부검도 못 했는데 어떤 자료를 근거로 인과성 심의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6월 아버지 전재명 씨(사망 당시 65세)를 잃은 혜원 씨(37)도 같은 의견이었다. 전 씨는 백신 접종 10일 뒤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혜원 씨는 어느 곳에서도 부검 안내를 받지 못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보건소에 항의하자 ‘부검을 안내해야 한다는 지침이 뒤늦게 내려와 안내를 하지 못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혜원 씨가 경기도청에 전화로 항의하자 담당자는 “고의 과실인지를 따져 국가 배상을 청구하라”면서도 “고의 과실이 인정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경기도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사자가 억울해하기에 배상 청구 절차가 있으니 이용하라고 알려준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혜원 씨는 “지난해 9월 ‘접종과 인과성 없음’ 결정이 나왔지만 지자체 과실로 부검을 못해 인과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억울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수많은 관련 서류, 당사자가 일일이 챙겨야

접종 후 이상반응 환자와 사망자 가족이 피해보상 신청을 하기 위해 수많은 서류를 챙기는 것도 쉽지 않다. 피해보상을 신청하려면 진료확인서와 진료비 영수증, 의무기록 사본, 부검감정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사망 등의 이유로 백신 접종자와 신청자가 다를 경우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도 내야 한다.

지난해 10월 아들 장지영 군(사망 당시 18세·지난해 8월 화이자 백신 접종)을 잃은 장성철 씨(50)는 “경찰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아들의 부검 감정서를 받은 후에야 보건소에 제출할 수 있었다”라며 “관계 기관끼리 서류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예방접종 피해보상전문위원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거론됐지만 여전히 달라진 건 없다. 동아일보가 대면 전화, 서면으로 만난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 환자 및 유족 158명 가운데 133명(84.2%)은 백신 이상반응 신고 또는 피해보상 신청 과정에서 질병관리청 및 보건소 등이 충분한 설명을 제공했느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했다.

유족들 “백신접종 피해, 정부-사회가 외면… 잊혀질까 두려워”


국가책임제 등 대선 공약 지지부진
유족 “정부가 인과성 입증 책임져야”
대통령실 “소급적용 등 쟁점 검토중”


올해 1월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가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 설치한 합동분향소의 최근 모습.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올해 1월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가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 설치한 합동분향소의 최근 모습.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이젠 사회에서 영영 잊혀질까 봐 두려워요.”

최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한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코백회) 유족의 말이다. 코백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질환이 생긴 이들과 사망자 가족들이 모인 단체다. 코백회 회원들은 “정부의 방역 정책에 동참한 이후 피해를 입었음에도 정부와 사회에 외면당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환자와 유족들은 백신 접종 피해를 적극 구제하겠다는 정치권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선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백신 접종 부작용 피해 회복 국가책임제’를 공약했다. 접종과 이상반응의 인과성 입증 책임을 국가가 지겠다는 내용이었다. 윤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2월 15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출정식을 가진 후 첫 일정으로 인접한 코백회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그러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코로나19 대응특별위원회가 4월 발표한 ‘비상대응 100일 로드맵’에는 국가책임제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접종과 이상반응 사이에 개연성은 있지만 증거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지급하는 의료비와 사망 위로금 상한선을 상향하는 내용만 담겼다. 김두경 코백회 회장은 “지원금 한도를 높이는 건 별 의미가 없다”며 “정부가 인과성 입증 책임을 지고, 백신 외 다른 원인을 밝히지 못할 경우 보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동아일보 질의에 “국가책임제 기조는 당연하다”면서도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 스터디가 필요하다. 소급 적용 여부, 인과성 입증 전 선보상 등의 쟁점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질병관리청은 4일 동아일보 보도 관련 자료를 내고 “백신 안전성 연구 확대, 의료비 및 사망 위로금 등 지원 확대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백신 부작용은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던 지난 정부에 대한 항의도 가로막혔다. 코백회 회원들은 새 정부 출범 후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시 사저 앞에서 사과 요구 집회를 열었는데, 지난달 1일 경찰이 ‘주민 사생활 평온 침해’를 이유로 집회 금지 통고를 해 왔다.

지난달 예정됐던 백경란 신임 질병관리청장과의 면담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고 한다.

올 1월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 설치한 합동분향소도 지난달 구청의 철거 명령이 떨어졌다. 김 회장은 “추모 공간까지 잃으면 정부가 우리를 길거리로 내모는 것”이라고 했다.

특별취재팀
▽ 팀장 조응형 사회부 기자 yesbro@donga.com
▽ 박종민 김윤이 최미송(이상 사회부) 기자 vacc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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