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개월 딸 학대치사 20대 엄마…법원 “국가도 책임” 석방[법조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19일 14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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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나라에서 임신과 출산이 여성에게 행복의 충분한 원천이 되지는 못할망정 또 다른 고통이나 불행의 씨앗이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산후우울증을 겪던 중 생후 1개월 된 친딸을 폭행하고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던 20대 여성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단순히 여성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되며, 국가는 물론 사회 전체가 모성(母性) 보호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에서 17일 이 같은 판단을 내렸다.

● 산후우울증 빠진 스무 살 엄마, 생후 1개월 딸 폭행·학대해 사망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식당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돕던 중 현재의 남편을 만나 아이를 임신했다. A 씨의 나이는 불과 만19세였다. A 씨의 어머니 등은 경제적 형편 등을 들어 A 씨의 출산을 말렸다. 하지만 A 씨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임신하게 된 데 감사한 마음을 갖고 출산을 결심했고, 이듬해 딸을 낳았다.

딸을 낳은 뒤 육아는 온전히 어린 엄마의 몫이 됐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왕절개로 딸을 출산했지만 제대로 몸을 추스르지 못한 채 출산한 지 5일 뒤부터 좁은 원룸에서 홀로 하루 종일 딸을 돌봐야 했다. 남편도 육아를 함께할 수 없었다. 남편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 6일, 오후 4시부터 오전 9시까지 밤새 택배 일을 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며 A 씨는 임신 중 겪었던 우울증이 더 악화됐다. 극심한 산후우울증에 빠져 자살 충동을 느끼고 출산을 후회하게 됐다. 결국 남편이 일을 나간 사이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3월 A 씨는 분유를 먹던 딸이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때리고 침대 매트리스 위에 떨어뜨리는 등 딸을 여러 차례에 걸쳐 폭행하고 학대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 딸은 한 달 뒤 결국 사망했다.

같은 해 10월 1심 재판부는 A 씨를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딸은 생후 1개월여밖에 되지 않아 자신의 의사를 울음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으므로 친모인 A 씨가 상태를 관찰하면서 상황에 맞게 대응해 딸을 적절하게 양육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며 “A 씨가 자신의 몸이 힘들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이유로 딸을 폭행하고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 항소심 재판부 “국가가 모성 보호 위해 노력해야” 집행유예 석방

그러나 이 사건 항소심을 심리한 대전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정재오)는 17일 “A 씨 혼자서 육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전적으로 A 씨만을 사회적으로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A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사람의 생명은 가장 존엄하고 근본적인 가치이자 사회가 보호해야 할 최고의 법익이고 갓 태어난 아기의 생명도 예외일 수 없다”며 “A 씨의 범행은 이 같이 절대적이고 소중한 가치와 법익을 침해한 것으로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어머니로서 아이를 잘 양육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단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A 씨가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데는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헌법 36조 2항은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산모나 신생아의 지원을 위해 여러 제도를 마련하고 시행하고 있지만 이는 주로 미혼모를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A 씨의 경우와 같이 혼인했으나 경제적 형편이 매우 어려운 임산부를 지원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매우 많이 소홀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런 지원 부족과 불균형은 국가의 한정된 재원을 고려하더라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며 “그런 제도마저도 홍보 부족 등으로 A 씨와 배우자가 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밖에도 A 씨의 출산 경위와 열악한 사회경제적 환경,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 등에 나타난 성행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 구속 수감된 상태로 재판을 받아온 A 씨는 이날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석방됐다. A 씨는 법정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재판부는 “A 씨가 자신의 잘못된 충동으로 누구보다도 소중한 딸을 잃게 된 것에 대해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고통과 죄책감 속에 괴로워하고 있다”며 “죄값을 치른 후 출소하게 되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나서 사후에라도 딸에게 용서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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