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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화성지구의 한겨울 삽질 악몽[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입력 2022-03-03 03:00업데이트 2022-03-0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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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평양 화성지구에서 열린 주택 1만 채 착공식에 참석한 주민 수만 명이 각종 구호판을 들고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통신
주성하 기자
지난달 김정은은 평양 화성지구 1만 가구 주택 건설 착공식에 참석했다. 작년에 완공하겠다던 송신·송화지구 1만 가구 건설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또 새로운 공사판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화성지구는 평양에서 살았던 내게도 생소한 지명이다. 행사장 사진과 건설 조감도 등을 토대로 구글어스로 찾아보다가 소스라치게 과거의 악몽과 맞닥뜨리게 됐다. 김정은이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저 장소, 순안공항으로 연결된 도로가 합장강과 만나는 저 지점은 26년 전 내가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을 뼈저리게 느낀 곳이다.

내가 김일성대 외국어문학부에 재학 중이던 1995년 12월. 대학에 금수산기념궁전 건설 일환으로 합장강 정리 과제가 떨어졌다. 학년별로 3개월씩 나가 강바닥을 파내라는 것인데, 우리 학년 100여 명은 하필 제일 추운 겨울에 차출됐다. 대학 기숙사에서 공사 현장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어야 했다. 우리가 가진 작업 도구는 정, 해머, 삽, 곡괭이 따위가 전부였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하루 종일 일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가장 먼저 휴식 공간으로 쓸 움막부터 만들었다. 언 땅에 정을 박고 교대로 해머를 휘둘러 봐야 흙이 겨우 밤톨만큼만 떨어져 나왔다. 작업 솜씨가 서툴러 정대를 잡았던 학생들이 해머에 손을 다치는 일도 잦았다. 갖은 고생 끝에 열흘 만에 겨우 기둥 몇 개를 세우고 수십 명이 빼곡히 들어갈 수 있는 움막을 만들었다.

다음 과제는 강바닥을 파내는 것인데, 이건 얼음을 깨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마대 하나에 흙을 채우는데, 네댓 명이 달라붙어 한나절씩 걸렸다. 100여 명이 동원됐지만 학생 간부라고 빠지고, 뇌물 주고 빠지고, 여자라고 봐주고 하다 보니 실제 일하는 사람은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당시는 고난의 행군 시기라 식량도 턱없이 부족했다. 강을 따라 부는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삐쩍 말라 허기진 젊은이들이 해머를 휘두르는 모습을 봤다면 누구나 시베리아 수용소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3개월 동안 겨우 강에 가로세로 5m 정도에 사람 키만 한 높이의 웅덩이를 하나 파놓았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도중에 최태복 노동당 교육비서가 벤츠를 타고 와서 직접 격려까지 했다. 동원 기간이 끝나가는데 과제 수행 목표치에 턱없이 미달하자 책임지고 나왔던 교수가 사색이 돼 뛰어다니더니, 몇 km 떨어진 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던 북한군 공병국에서 굴착기(포클레인) 1대를 한나절 빌려오기로 했다. 군인들은 대가로 디젤유 100L, 굴착기 바가지에 외제 담배와 밀주가 아닌 공장에서 제조한 술을 가득 채워줄 것을 요구했다. 교수는 학급 인원에 비례해 술, 담배를 분담시켰다.

철수하기 사흘 전쯤 군관 1명과 병사 1명이 굴착기를 몰고 나타났다. 그날 우리는 제방에 앉아 굴착기의 작업 모습을 지켜봤다. 불과 다섯 시간 만에 우리가 석 달 동안 파놓은 웅덩이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웅덩이가 생겨났다. 술, 담배를 가득 실은 바가지를 마대로 덮고 돌아가는 굴착기를 보며 우리 모두는 극심한 허탈감을 느꼈다. 대학생 100명이 강추위에 벌벌 떨며 3개월 동안 한 일이 굴착기 반나절 작업량보다 가치가 없다는 것을 목도한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무지한 사회는 망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다음 날 갑자기 조선중앙TV 기자들이 왔다. 책임자의 요구대로 우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옷을 입은 채 가슴까지 차오르는 얼음물에 들어가 흙을 파내는 연기를 했다. 갈아입을 옷도 없어 모닥불로 얼어붙은 옷을 말렸다. 그날 저녁 중앙방송에 “김일성대 학생들이 충성의 마음을 안고 얼음물에 뛰어들어 강을 파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땐 평양도 늘 정전이라 대다수가 그걸 보진 못했다. 전기가 오는 중앙당 아파트에 사는 몇 명이 다음 날 어제 TV에 그럴듯하게 나왔다고 전해줬다. 그 후부터 TV에서 물에 뛰어들었다는 영웅적 뉴스가 나오면 하나도 믿지 않게 됐다.

우리가 얼음물에 뛰어들었던 그 합장강변에 지난달 수만 명의 청년이 다시 모였다. 내가 3개월 동안 언 땅에 삽질을 하던 그때쯤 태어난 청년들이다.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통치자가 바뀌었지만 고픈 배를 부여잡고 삽질하는 민초들의 삶은 한 세대가 지나도 변한 것이 없다. 화성지구 주택 건설 착공식 사진을 보며 26년 전 저 장소에서 “이런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고, 또 망해야 돼”라고 분노했던 젊은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도 망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언제까지 북한 청년들이 이런 삽질에 동원돼야 할까. 나의 분노도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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