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공사 종합세트’ 가능성 드러난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사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20일 11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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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인근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11일 오후 붕괴 사고 직후 현장을 촬영한 모습. 이 근로자는 “이날 순간적으로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독자 제공 동영상 캡처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인근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11일 오후 붕괴 사고 직후 현장을 촬영한 모습. 이 근로자는 “이날 순간적으로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독자 제공 동영상 캡처
11일 발생한 광주 신축 아파트 외벽 붕괴사고가 10일째로 접어들면서 쏟아지고 있는 각종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부실공사 종합세트’로 불릴만한 수준으로 문제가 많았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건설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할 때 원인으로 지목될 거의 모든 요소가 개입됐기 때문이다.

즉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한 무리한 공사 강행에서부터 부실 자재 활용 가능성, 시공능력을 갖추지 못한 영세업체에 불법 하도급 떠넘기기까지 포함돼 있다. 여기에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부실한 내부 통제 시스템과 책임지지 않는 이사회와 최대주주 등 지배구조에도 책임이 있다는 증권사의 분석보고서도 나왔다.

이에 따라 HDC현산에 대한 강력한 징계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6월 발생한 철거건물 붕괴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관할 지자체에선 8개월 영업정치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게다가 최고 수준의 중징계를 선언한 정부 방침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 드러나고 있는 ‘부실공사 종합세트’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할 때 제일 먼저 제기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무리한 공기 맞추기이다. 작업을 서두르다가 부실공사가 이뤄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 현장에서도 이같은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감리업체가 작성해 10일 광주 서구청에 제출한 지난해 4분기(10¤12월) 보고서에 따르면 1·2단지 전체 골조 공사는 올해 2월 15월까지, 이번에 붕괴한 201동은 지난해 12월 말까지 각각 끝내는 것으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11일 꼭대기 층인 39층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그만큼 공사 진행이 늦어진 셈이고, 공기 단축을 위한 부실공사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동 콘크리트 타설 작업일지’에 따르면 11월 말부터 한 달 새 다섯 개 층에 대한 콘크리트 타설이 진행됐다. 특히 건물의 꼭대기 부분인 36~39층은 6~8일마다 한 층씩 타설작업이 이뤄졌다.

하지만 온도가 낮은 겨울철에는 콘크리트가 굳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해 1층 당 2주 정도의 충분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협력업체로부터 “HDC현산이 공사를 독촉했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재 부실도 빼놓을 수 없는 건설사고의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사고 당시 타설 중이던 콘크리트에 하자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한 10개 업체 가운데 8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토부의 점검시점이 2020년 7~11월과 지난해 5~7월에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부적합 판정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사고현장에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부실공사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게 시공업체의 경험이다. 전문성을 갖추고 제대로 공사를 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고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맡은 업체는 HDC현산과 계약한 전문업체가 아니고, 시멘트를 퍼 올리는 펌프카 장비 임대업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재하도급으로 대리 시공을 한 셈이다.
● 내부 경영시스템도 문제를 키웠다
이번 사고가 HDC현산의 내부 경영 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유안타증권이 18일 발행한 보고서 ‘광주 사고와 HDC 거버넌스’에서 “2018년 9월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지배구조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최대주주가 원하는 대로 경영을 할 수 있는 안정적 지분을 확보한 뒤 책임 있는 경영자의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각종 사건사고나 경영상 문제를 일으켜도 경영진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고, 이번 사고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전인 2012년 말까지 HDC현산의 최대주주는 글로벌투자회사인 템플턴자산운용(20.05%)이었다. 정몽규 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18.7%에 그쳤다. 그런데 2018년 정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가 된 HDC 지분을 34.29%로 높이며 최대주주가 됐다.
● 현실화하고 있는 중징계 가능성
한편 이번 사고에 따른 HDC현산에 대한 책임론이 들끓으면서 중징계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지난해 6월 발생한 철거현장 붕괴 참사와 관련해 관할 지자체인 광주 동구청이 HDC현산에 대해 8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려줄 것을 등록관청인 서울시에 요청했다. 부실시공 관련 조사권한은 국토부에 있지만 해당업체에 대한 행정처분은 등록관청인 지자체에서 처리하게 돼 있다. 서울시는 1개월 이내에 처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이와는 별도로 이번 사고와 관련해 등록취소 가능성까지 포함한 처벌 방침을 세운 상태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이 사고 발생 이튿날인 12일 사고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건축시공과 구조 등 전문가로 구성된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즉시 구성해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관리책임 부실 등 위법사항은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노 장관은 이어 17일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법이 규정한 가장 강한 페널티(처벌)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등록말소까지도 가능하다는 의견도 내비쳤다.

업계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고려할 때 추가로 1년 영업정지와 같은 처벌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1년8개월 영업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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