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 번질까봐 노마스크”…핼러윈 명소에 방역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31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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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사진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핼러윈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사거리와 해밀턴호텔 주변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추리닝 복장 등 코스튬을 입고 얼굴에 분장을 한 인파로 가득 찼다. 수천 명이 인도와 도로를 꽉 채워 기자가 100m 거리를 이동하는데 20분이 걸릴 정도였다.

방문객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거리를 오가는 가운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좀비 등으로 분장한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 마스크를 아예 쓰지 않거나, 가면만 쓴 경우도 있었다. 한 방문객은 “얼굴 분장이 번질까봐 오늘은 마스크 못 쓴다”고 했다.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끼리 서로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술병을 들고 다니며 마스크를 내리고 ‘거리 음주’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곳곳에서 흡연자들이 뿜어대는 뿌연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들 사이로 선별진료소 의료진이 착용하는 ‘레벨D 방호복’ 코스튬을 입은 방문객이 지나갔다.

1일부터 ‘위드 코로나’ 방역 지침이 시행된 가운데 정부는 하루 전인 핼러윈에 방역 대란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새 지침 적용 시점을 1일 오전 5시로 설정하는 등 자발적 방역 참여를 강조했다. 하지만 핼러윈 명소의 인산인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다. 지난달 30일 오후 7시경 압구정로데오역 인근 삼거리는 고급 외제차 수십 대가 줄지어 있어 통행이 거의 마비된 상태였다. 핼러윈 분장을 한 가게 종업원들은 음악을 크게 틀고 테라스를 열어둔 채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10명이 넘는 손님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술집이 여러 곳 있었다. 일부 가게에서는 “웨이팅을 더 이상 못 받는다”며 손님들을 돌려보냈다. 친구 7명과 함께 온 김모 씨는 “골목으로 들어가야 자리가 있을 것 같다. 30분 동안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10시에 식당과 주점이 문을 닫자 거리에 더 많은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밤 11시에 우리 집에서 파티 하니까 와요. 인스타그램 팔로우 했죠?”라며 약속을 잡으려 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유명 할리우드 여배우 분장을 한 20대 여성은 “같이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길을 걸어가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날 이태원 등지에는 경찰과 서울시 등이 특별 방역 단속을 나왔다. 미군 헌병대도 단속에 참여했다. 경찰은 오후 10시가 되자 “22시입니다. 마스크 착용해주십시오. 귀가해주세요”라고 확성기로 방송하며 호각을 불었지만 시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취객들은 경찰관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경찰관을 툭툭 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도 호각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지만 인파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한 취객은 단속 공무원을 향해 “모레부터 위드 코로나라면서요. 핼러윈에 맞춰 (방역 지침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조롱하듯 말했다.

음주 교통사고도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10월 한 달 간 음주운전 단속 건수는 하루 평균 361.8건으로, 올 1~9월 평균인 309.9건보다 16.7% 많았다. 지난달 30일 오후 10시경 서울 서초구에서는 BMW 승용차를 몰던 20대 남성이 음주 운전 신고를 충돌한 경찰을 치고 달아나려다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 관계자는 “음주운전 확산 분위기를 제압할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1일 시행된 위드 코로나 1단계에 맞춰 음주운전을 집중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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