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흉기 난동에도 “빈 병상 없다”…정신병원 응급입원 거부율 2.8배로 늘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6일 14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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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시스
사진 뉴시스
12일 경남 양산시에서 한 남성이 스스로 목을 조르고 할퀴며 자해를 시도했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이 남성이 조현병 증상을 보인다고 판단하고 인근 정신병원에 인계하려 했다. 정신질환자가 자해하거나 타인을 해칠 위험을 보일 경우 의사와 경찰관의 판단에 따라 최장 72시간 ‘응급입원’을 시킬 수 있다.

하지만 환자를 받아주는 정신병원이 없었다. 환자가 37.9도 고열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의심돼 유전자증폭(PCR) 검사로 음성을 확인해야 입원을 시킬 수 있다는 이유였다. 코로나19 선별 격리실을 갖춘 인근 다른 병원들도 최근 4차 유행으로 의심환자가 급증해 빈 병상이 없다고 했다.

● 흉기 난동에도 “빈 병상 없다” 입원 거부

이처럼 위험하고 위협적인 행동을 보여도 코로나19 탓에 제때 입원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자가 늘고 있다. 16일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이 경찰청에게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경찰이 응급입원을 요청한 총 7591건 가운데 정신병원이 거부한 사례는 214건으로 거부 비율이 2.8%였다. 그런데 지난해엔 이 비율이 5431건 중 382건(7.0%)으로 증가하더니 올해(1~6월)엔 3992건 중 316건(7.9%)이 됐다. 코로나19 유행 전보다 응급입원 거부 비율이 2.8배로 높아진 것.

아무런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없는 정신질환자도 빈 병상을 찾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기존에 야간 응급진료를 도맡았던 병원들이 당직 의료진과 병상을 코로나19 선별 진료에 활용하면서 일반 정신질환자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A 병원은 코로나19 선별검사를 시작한 뒤 응급병상 14개를 폐쇄했다. 서울 B 병원은 병상 여유는 있지만 의료진이 부족하다며 환자를 받지 않고 있다. 충북 S 병원도 응급실을 아예 폐쇄한 상태다.

현장에서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7월 경기 안양시에서는 한 환자가 어머니를 칼로 찌르겠다고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인근에 빈 병상이 없어 입원하지 못했다. 같은 달 부산 금정구에서도 비슷한 신고가 접수됐는데 그땐 부산 내 모든 정신병원이 ‘빈 병상이 없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엔 경남 김해시에서 조현병 증세를 보인 5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구조됐지만 병원들이 받아주지 않아 가족에 인계됐다가 끝내 극단 선택을 해 숨진 채 발견됐다.

● 병상 콘트롤타워-24시간 진료체계 필요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곪았던 문제가 터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전부터 △권역별로 빈 병상을 조율하는 체계 △감염병을 포함한 신체질환 증상이 동반된 정신질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설 △24시간 정신질환자를 진료할 인력이 없는 이른바 ‘3무(無) 문제’가 국내 정신의학계의 오랜 과제였는데, 코로나19가 유행하며 이 모든 문제가 동시에 터졌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빈 병상을 실시간으로 조율해 정신질환자 응급입원을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을 찾아주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수도권 코로나19 공동대응 상황실’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을 빈 병상으로 배정하는 것과 비슷한 형식이다. 또 신체질환 증상을 보이는 정신질환자도 24시간 진료할 수 있는 병상과 의료진을 갖춘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를 내년 8곳 지정한 뒤 2025년까지 14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응급입원이 필요한 정신질환자가 병상을 찾을 때까지 안전하게 대기할 수 있도록 현장 경찰관의 대응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재호 의원은 “경찰은 복지부 등 관계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정신질환자 대응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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