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억짜리 아파트까지…층간소음 없는곳 없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3일 11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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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이렇게 푼다]
<11>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이 말하는 해결 방법

“층간소음은 위층만 조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70억원짜리 H아파트에서도 층간소음 문제가 최근에 있었습니다. 층간소음이 일정 부분 불가피한 게 현실이라면 아래 위층 서로가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히려 해결의 열쇠는 아래층에 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마다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사건이 있어나고, 칼부림 폭행이 벌어진다.

당사자끼리 해결하라고 내버려두는 사이 수많은 층간소음 피해자들이 우울증에 걸려 정신병원에 오고 간다. 특히 코로나 유행으로 인해 집콕 생활이 늘면서 작년과 올해 층간소음 분쟁이 크게 늘었다.

이에 비해 층간소음을 해결하려는 제도적 장치는 매우 미흡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상담센터가 있기는 하지만 인력과 예산 등의 부족 등의 이유로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국내층간소음전문가인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이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에서 아파트의 시공과정과 소음발생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국내층간소음전문가인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이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에서 아파트의 시공과정과 소음발생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소장은 “설계 시공하는 건설 회사나 정부, 지차체도 국민 고통 해결차원에서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차 소장은 자타공인 층간소음 상담분야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2001년부터 20년간 층간소음 상담만을 해오면서 수많은 현장 사례를 직접 접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왔다.

그동안 동아일보 인터넷에 10회 연재한 ‘층간소음. 이렇게 푼다’ 시리즈에 차 소장의 경험과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다. 차 소장을 만나 층간소음의 해결책을 다시 한번 직접 들어봤다.

-건축학 박사이신데, 특별히 층간소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언제인지요? 그 계기가 있었나요?

“이 분야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2001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신문을 봤는데 층간소음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피해자들을 상대로 층간소음에 대한 상담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1만2000명이 넘는 교육생을 배출했고, 그 중 2000여 명이 현재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비롯해 여러 지자체와 단체, 관련 회사에서 전문 상담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6000여 명의 피해자를 직접 상담·중재하고 3만 여건이 넘는 상담데이터를 축적해 층간소음의 각종 원인과 유형별 대처법을 매뉴얼로 묶고 이론화했습니다”

-과거에도 층간소음이 있었을텐데, 최근 몇 년간 부쩍 사회적 이슈가 된 것 같습니다.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작년 코로나로 인해 민원이 2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올해 6월에는 영등포에서 층간소음 갈등을 겪고 있던 60대 이웃에게 흉기를 휘두른 30대 남성이 경찰에 긴급 체포됐고, 마포에서는 20대 남성이 70대 노인을 무차별 폭행해 중상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또 며칠 전 익산에서는 50대 남성이 층간소음 주의를 주었다는 이유로 70대 경비원의 코뼈를 부러뜨린 사건도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몇몇 민감한 아랫집 분들의 불평불만으로만 여겨졌다가 2010년대에 들어서 층간소음으로 인해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생활보호 같은 권리의식이 커진 것 같습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외국에서나 옛날에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이 없습니까?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발생하는데, 유독 한국에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아파트가 많고 층간소음에 민감합니다.

20년 전에도 아랫집 피해자들을 괴롭힌 가장 큰 소음원은 아이를 뛰는 소리와 어른 걷는 소리였습니다. 20년이 지나도록 나아진 게 별로 없습니다. 여기에는 공동주택 설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기둥 구조가 벽식, 기둥식이 있을 수 있는데 2007년에서 2017년까지 10년 간 조사해보니 95.5%가 벽식 구조를 채택했습니다. 벽식 구조는 벽을 타고 윗집의 소음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벽식 구조는 기둥식에 비해 공사 기간이 짧고 비용도 적게 듭니다. 10층에서 아이들이 뛰는데 9층은 물론 8층이나 7층까지도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살인 폭행까지 일어나는데, 다른 사건보다 더 예민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층간소음에는 독특한 특징 몇 개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소음에 한 번 노출된 사람은 평생 간다는 것입니다. 이걸 우리는 ‘귀트임 현상’이라고 합니다. 귀가 트이면 듣고 싶지 않아도 위층 소리가 저절로 들리는 거예요. 윗집 사람이 마치 옆에서 함께 사는 것처럼 느껴지니 얼마나 힘들고 괴롭겠습니까?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다는 한남 더힐에도 층간소음 때문에 입주민들끼리 분쟁이 있었다는 기사를 보셨을 겁니다. 제가 아는 교도관에게 들어보니 2층으로 된 교도소에서도 층간소음 민원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층간소음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든 있습니다”

-층간소음 문제는 오히려 아래층 사람이 키를 쥐고 있다고 하셨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층간소음이 있고 없고를 판단하는 건 아랫집이에요. 그런데 아이들이 뛰노는 자리에 매트를 깔고, 어른들이 걸을 때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으면 층간소음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잘못된 접근 방식 때문에 이웃간에 폭행이 일어나고 살인이 일어나는 겁니다”

-층간소음 분쟁의 가장 많은 유형은 무엇입니까?

“아이들이 뛰거나 어른들 걷는 소리가 60%가 넘습니다. 이 두 가지 소리는 대표적인 ‘직접 충격음’ 즉 ‘저주파’입니다. 소리뿐만 아니라 진동도 함께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 목소리 같은 ‘간접 충격음’ 즉 ‘고주파’보다 더 참기 힘듭니다. 요즘은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 민원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소음원을 몰라 오해가 생기고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냉장고끼리 붙여 놓아 공명 현상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아랫집에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가장 인상에 남는 상담은 무엇인가요?

“2013년?2월 9일에 일어난 서울 면목동 형제 살인사건입니다. 한 집안에서 세 사람이 죽은 끔찍하고 가슴 아픈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기자와 함께 현장에 가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상담을 하다보면 살인 충동을 느낀다고 토로하는 분이 많습니다. 층간소음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집은 지옥입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갈 때 자신을 괴롭히는 윗집이나 아랫집에 불이 켜져 있으면 그때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화기가 올라옵니다. 특히 층간소음 피해가 1년 넘은 분들은 ”아, 이러다 내가 층간소음으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왕 죽을 거 같이 죽자“며 행동에 옮기는 분도 꽤 많습니다. 보도되지 않는 사건도 많을 겁니다”

-가해자나 피해자가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은 무엇인가요?

“크게 네 가지의 방법만 잘 지키면 어느 정도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층간소음이 발생하면 6개월을 이내에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참고 참다왔는데 올라가지 말고 피해를 입으면 빠른 시일 내에 윗집을 방문하는 게 좋습니다. 인터폰으로 먼저 양해를 구하고 올라가는 게 좋습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문제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둘째 소음의 범위와 한계를 정하고 서로의 노력을 인정해야 합니다. 소음 없는 집은 없어요. 구체적으로 소음과 발생시간대를 윗집에 전달해야 합니다. 아랫집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는 윗집은 거의 없습니다. 서로의 노력을 인정하면 문제는 거의 해결된 겁니다.

셋째 상호비방과 복수를 멈춰야 합니다. 특히 예민하다거나 미쳤다거나 하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

넷째 서로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역지사지 정신이 필요합니다.

-건설회사의 책임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그동안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었는데 2019년 5월 감사원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고 소비자들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LH나 SH가 시공한 22개 공공아파트를 조사해 보니 98%가 사전 인증 받은 등급보다 하락했고, 이중 60%는 최소 성능 기준에도 못 미쳤습니다. 그렇게 지어놓고 ‘층간소음 없는 아파트’라고 대대적인 광고를 해댄 겁니다. 설계 시공단계에서 층간소음을 줄이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층간소음은 시공사의 구조적인 문제부터 그것을 감독 관리하는 국토부와 환경부 같은 정부와 지자체의 변화 없이는 완전 해결이 어렵습니다. 윗집과 아랫집의 분쟁은 어떻게 보면 사후관리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지금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층간소음 관련 법안을 만들어 달라는 청원이 700개 이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공동주택이 80%가 넘는 우리나라에서 층간소음이 더 큰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않도록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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