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풍 막은 ‘리틀 윤석열’ 檢고검장 대거 밀려나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8일 11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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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고 있는 박범계 법무부장관. 동아일보DB
지난달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고 있는 박범계 법무부장관. 동아일보DB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27일 검사장급 간부들의 인사 적체 문제를 거론하고 검찰인사위원회에서 검사장급 이상의 탄력 인사 방안이 논의되면서 내달 초순경 단행될 검찰 인사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검사장급 간부의 인사 적체 해소를 명분으로 지난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징계 국면에서 정권에 반기를 들었던 고검장급 및 검사장급 간부들을 대거 밀어내기 위한 좌천 인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1, 12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주도한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는 결국 법원에서 직무배제 집행과 정직 2개월 처분을 중단시켜 달라는 윤 전 총장의 신청을 받아들임으로써 추 전 장관과 여권의 완패로 일단락됐다. ‘정권 수사’를 했다는 이유로 총장직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던 윤 전 총장은 구사일생으로 총장직에 복귀했고, 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 징계 사태가 윤 전 총장을 중도보수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밀어 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사태 전개 과정에서는 전국의 검사들이 고검장급부터 일선 검사들까지 추 전 장관의 직무배제와 징계 청구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집단 반발했다. 특히 검찰을 이끌어가는 고검장급과 검사장급 간부들은 공동입장문과 성명을 통해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윤 전 총장 직무배제 및 징계 청구가 법적으로 무리하다는 점을 공론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곧 당시 싸움에서 대패한 여권에게는 뼈아픈 기억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설 연휴를 전후해 여권에서는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을 목표로 한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안이 추진됐고, 3월 4일 윤 전 총장은 이에 반대하며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윤 전 총장의 중도 퇴진이 징계 무산에 대한 여권의 첫 반격이었다면 이번 검찰 인사는 두 번째 반격이자 검찰을 정권 영향력 아래 묶어두려는 완결판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일부 인지부서를 제외하고는 ‘6대 범죄’ 직접 수사를 금지하고 주요 국면에서 정권에 반기를 들었던 검사들을 대거 교체할 경우 여권으로서는 검찰의 정권 수사로 인한 불안에서 벗어나고 정권 재창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고검장들은 윤 전 총장이 사퇴한 이후에도 조남관 총장 권한대행(대검 차장검사) 체제에서 검찰이 법집행을 원칙적으로 하는 데 중심을 잡도록 집단적 의사를 모아왔다. 하지만 고검장들의 이런 집단적 의사는 결국 이번 인사에서 이들이 조직에서 밀려나도록 압박당하는 정치적 이유가 되고 있다. 정권과 검찰이 충돌한 국면에서 여권에 반대한 것이 몇 달이 지나 인사 불이익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고검장급 간부들이 이번 인사에서 교체 대상으로 지목된 것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총장 후보 탈락과도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초 가장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였던 이 지검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에 연루되지 않고 총장 후보자가 됐다면 이 지검장과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인 고검장급 5명은 자동으로 용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지검장이 후보에 들지 못하고 총장 후보자의 연수원 기수가 거슬러 올라가 20기인 김오수 후보자가 지명되면서 23, 24기가 포진하고 있는 후배 고검장들의 잔류 가능성도 커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검찰개혁을 위한 인적 쇄신이 지장을 받는다는 점에서 여권 핵심의 의중이 인사를 통한 고검장 교체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차기 총장의 기수가 20기로 올라가면서 23기 또는 24기 고검장들의 사퇴 이유가 줄어들자 탄력 인사를 명분으로 한 좌천 인사로 고검장들을 압박하는 카드가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탄력 인사의 경우 여권으로선 김 전 차관 사건으로 기소된 이성윤 지검장 등 친정부 간부들을 핵심 보직으로 이동시키면서도 정권의 방침에 반대했던 간부들은 한직으로 배치해 사퇴를 유도할 수 있는 이점이 거론되고 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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