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견제 ‘기본’ 안 지킨 공수처…갈수록 위상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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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5월 7일 11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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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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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각별한 관심과 기대 속에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스스로 공정성 논란을 자초하면서 날이 갈수록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 결과로 최근 완료한 검사 채용에서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한 데 이어 합격한 수사관 20명 중 2명이 임용을 포기하는 등 조직을 구성하기도 전에 이탈이 발생하고 있다.

공수처는 검찰을 능가하는 막강한 권한으로 한 때 선망 받는 공직으로 부상했지만 조직 구성에 나서자 의외로 법조계 인재들이 모이지 않았다. 그 일차적인 이유는 공수처가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너무 빨리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휘말리면서 제대로 된 고위공직자 수사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출범 전 야당에서 제기된 ‘정권 호위기구’ 우려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황제 조사’ 논란 등으로 하나둘 현실화할 조짐을 보인 것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에는 ‘공소권 유보부 이첩 조항’을 공수처 내부의 사건사무규칙으로 제정해 검찰과 마찰을 빚고 있다. 판사, 검사의 비위 사건을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하더라도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다른 수사기관의 권한을 제한하는 문제를 내부 규칙으로 제정하는 것에 대한 위법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데도 공수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규칙 제정을 강행했다. 유사시 대통령 비리까지도 수사할 수 있는 최고 수사기관으로서의 무게감과 신뢰도와는 거리가 먼 조치였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김진욱 공수처장. 동아일보 DB
김진욱 공수처장. 동아일보 DB
1월 취임한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은 말로는 공정한 수사, 인권친화적 수사를 강조했지만 공수처가 실제 보여준 모습은 정권 친화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김 처장이 밝힌 대로 ‘법 앞의 평등과 법의 지배’를 구현하려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같은 친정부 성향의 고위공직자일수록 정해진 법 절차를 따라 엄정하게 조사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실제는 일요일에 자신의 관용차까지 내어주는 특별대우를 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자신이 취임사에서 제시한 ‘국민의 신뢰 확보’라는 공수처의 목표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를 스스로 한 것이다.

여권이 공수처를 어떤 의도에서 설립했든지 간에 공수처는 원래 ‘살아 있는 권력’을 철저히 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과거 정부에서 정권 실세 등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 앞에서 검찰이 청와대 눈치를 보며 주춤거리는 일이 생기자 검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독립적인 수사기구로 공수처가 제안된 것이었다. 지금 공수처가 제대로 된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위상이 추락하고 조직이 흔들리는 것도 공수처의 존재 이유에 반하는 일들을 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정권 견제기구로서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 혹시라도 여권이나 청와대, 법무부와 밀착 관계가 있다면 과감히 단절하고 외풍을 막는 처장을 중심으로 특별수사 역량을 키우면서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준비에 집중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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