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거절당한 ‘백신 스와프’… 대미외교 난맥상 드러내

박효목 기자 , 권오혁 기자 , 최지선 기자 입력 2021-04-23 03:00수정 2021-04-2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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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
대미라인 이도훈-김현종 물러나고 이수혁 美대사는 국감 발언 논란
‘대미라인 실종-대미전략 부재’ 지적… 美中사이 줄타기 외교 한계 노출
‘미국통’ 없는 의회도 외교채널 먹통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한미 간 ‘백신 스와프’를 거론한 지 이틀 만에 미국이 사실상 거절 의사를 밝히면서 문재인 정부의 누적된 대미(對美) 외교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갈수록 심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정부는 물론 여권 전체가 전략적 모호성만 강조해온 결과가 결국 최우방국인 미국의 우선 지원 순위에서 밀려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해외로 보낼 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충분치 않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22일 “미국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발언일 것”이라며 “한미 간 백신 협력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백신 문제가 대미라인의 실종과 대미전략의 부재로 인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미국의 중국 압박에도 불구하고 미중 사이에서 계속 줄타기를 해 왔다. 청와대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반(反)중국 연합체인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참여)에는 계속 모호한 입장을 유지해 온 반면 20일 중국이 주도하는 보아오 포럼에는 미국 동맹국 중 유일하게 참석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 입장에서 청와대의 속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백신 스와프에 대한 사실상 거절 역시 그 연장선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도 “정 장관이 미국을 방문하는 등 쓸 수 있는 카드를 총동원해서라도 미국과의 신뢰를 쌓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쿼드 가입은 부정적으로 얘기하면서 반도체와 배터리를 한미 백신의 지렛대로 삼는 외교 방식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배터리가 전 세계적으로 첨예한 전략 자산화되어 가는 건 맞지만, 그보다 한미 간의 근본적인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앞서 정 장관은 21일 관훈토론회에서 “우리 기업이 능력 있는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확대한다면 미국 조야로부터 한국이 백신 때문에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줘야겠다는 여론 형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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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현재의 외교·안보라인에 미국 전문가가 없다는 점도 대미 외교 난맥상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접점이 있었던 이도훈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김현종 전 국가안보실 2차장은 물러난 상황. 여기에 대미 외교의 최일선에서 뛰어야 할 이수혁 주미 대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70년간 미국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통상 전문가인 정 장관을 비롯해 정부와 청와대의 최고 결정자들, 그리고 여당 내에도 미국 전문가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 역시 “여당 의원들 가운데 ‘중국통’은 많지만 ‘미국통’은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공식 외교 라인과 별도로 의회 외교 채널조차 구축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정 장관이 미국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백신 스와프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미 행정부의 선택지가 더 좁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아직 논의 중인 백신 스와프 문제를 공개한 것에 대해 미국에서는 난감했을 것”이라며 “화이자나 모더나 등 기업과 접촉을 하면서 물밑으로 미국 정부와 협상을 해야 미국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효목 tree624@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권오혁·최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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