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쿼드와는 백신 협력”… 한국, 백신 외교전서 설자리 좁아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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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희박해진 ‘한미 백신 스와프’
美 “인접한 加-멕시코와도 협력”… 한국, 美협력 우선순위서 밀려
국내 백신 부족 당분간 지속될듯
美NSC, 中견제 협의체 ‘쿼드’ 연계 “내년까지 세계 10억 도스 제공”
靑 내달 정상회담 백신 논의 총력

백신 접종자에 핀배지 건네는 美 퍼스트레이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왼쪽)가 21일(현지 시간)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있는 백신접종센터를 방문해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주민에게 핀배지를 건네주고 있다. 앨버커키=AP 뉴시스
백신 접종자에 핀배지 건네는 美 퍼스트레이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왼쪽)가 21일(현지 시간)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있는 백신접종센터를 방문해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주민에게 핀배지를 건네주고 있다. 앨버커키=AP 뉴시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백신 스와프를) 미국과 진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밝힌 지 이틀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요청을 사실상 거절하면서 백신 수급 문제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자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며 당분간 국내에 물량을 쏟아붓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캐나다 등 인접국과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협의체)’ 참가국과는 백신 협력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백신을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을 숨기지 않은 것. 우리 정부가 중국을 견제하는 쿼드에 참여하지 않고 미중 사이 ‘줄타기 외교’를 해왔지만 백신 사태로 한계가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 ‘쿼드’와는 협력 의사 밝힌 美
미국이 백신 스와프와 관련해 거절 의사를 밝힌 표면적인 이유는 ‘미국 우선 접종’ 방침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간) 연설에서 “백신은 공짜고, 안전하며 스스로와 가족 및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이라면서 “지금은 (다른 나라에) 백신을 줄 만큼 충분히 보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부스터 샷’(3차 접종)까지 접종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백신을 섣불리 해외에 나눠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상당수다.

그러나 이면으로는 백신 수급 문제를 외교 현안과 연결시킬 수 있다는 기류를 내비쳤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백신 수급 상황을 설명하던 중 “캐나다, 멕시코 및 ‘쿼드 국가’와도 논의해 왔다”고 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트위터를 통해 “어제 미국이 주최한 쿼드 백신 전문가 그룹 회의에서 전 세계에 2022년까지 최소 백신 10억 도스를 제공하고, 인도태평양 지역 백신 접종을 강화하는 다음 단계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중국을 견제하는 안보협의체인 쿼드가 백신 협력으로도 연계, 확대되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미국의 줄기찬 쿼드 합류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다는 점이다. 정 장관은 전날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미국과 백신 스와프를 하려면 쿼드에 가입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미중 갈등에서 우리 역할과 백신은 연관이 없다. 팬데믹 상황에서 양국 협력은 외교적 분야에서의 논의와는 별개”라고 했다. 다만 “분야에 따라서는 협력할 수 있다”고 했다. 외교부는 코로나19 방역이나 백신 분야에서는 쿼드 국가들과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이 백신 개발 기술을, 일본과 호주가 재정 지원을, 인도가 대량 생산을 맡으며 쿼드 내 백신 협력이 견고해지는 상황에서 참가국도 아닌 한국이 낄 자리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외교가에서 “백신 문제의 핵심은 한미 동맹에 대한 백악관의 인식”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 靑, 한미 정상회담 ‘백신 의제’ 위해 총력전
백악관의 부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계속해서 미국과 백신 공급 문제를 상의하겠다는 계획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22일 “정 장관이 관훈클럽 토론회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현실적으로는 미국 측이 자기네 상황도 여유가 있지 않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걸 두 차례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 외교부 입장에서는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다음 달 하순경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는 만큼 그때까지 최대한 물밑 협상을 통해 백신 논의를 진척시키고, 양국 정상 대화 테이블에 의제로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청와대는 이날 NSC를 열고 “글로벌 백신 공급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백신 물량의 추가 확보와 신속한 도입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에 앞서 미국을 찾았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행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스가 총리는 방미에서 알베르트 부를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해 백신 추가 공급을 약속받은 바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처럼 미 행정부가 직접 발을 담그지 않으면서도 기업에서 결정하는 형태로 만드는 접근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 정부를 직접적으로 끌어들이기보다는 비공개로 물밑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선 aurinko@donga.com·이은택 기자
#코로나 백신#한미 백신 스와프#정의용 외교부 장관#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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