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직원이 산 농지엔 묘목 빼곡… “추가보상 노린 투기꾼 수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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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직원 땅 투기 의혹]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가보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소유한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한 건물 앞에 차량이 주차돼 있다. 건물 1층은 한 기계업체가 임차해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2층은 공장 직원들의 숙소로 활용됐다고 한다. 최근 건물 소유주 중 1명인 40대 LH 직원이 직접 
거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와 현재는 비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흥=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소유한 경기 시흥시 과림동의 한 건물 앞에 차량이 주차돼 있다. 건물 1층은 한 기계업체가 임차해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2층은 공장 직원들의 숙소로 활용됐다고 한다. 최근 건물 소유주 중 1명인 40대 LH 직원이 직접 거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와 현재는 비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흥=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해 봄에 나무를 심었죠. 심어만 놓고 두세 달에 한 번쯤 잠깐씩 왔다 갔어요.”

3일 경기 시흥시 과림동에 있는 한 농지. 검은색 비닐이 씌워진 땅에 성인 허리쯤 오는 어린 묘목이 빼곡히 심겨 있었다. 인근 작업장 직원들은 “원래 농사를 짓던 평범한 논이었다”고 했다.

1200평이 조금 넘는 이 농지는 2일 참여연대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지난달 24일 정부의 광명·시흥 신도시 조성 발표 전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들이 전체 100억 원대의 토지를 매입했다고 공개한 필지 10곳 중 하나다. 2019년 6월 이곳을 사들인 4명 중 3명은 3일 국토교통부가 직위를 해제하기 직전까지 LH 과천의왕사업단의 같은 부서에서 보상 담당으로 근무했다. 이들은 이 토지를 매입하며 각자 은행에서 2억3000만 원에서 4억5000만 원을 대출받기도 했다. 바로 옆엔 같은 날 당시 LH의 한 사업단장으로 알려진 인물이 매입한 농지도 있다. 두 필지는 경계가 없어 눈으로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 “농지에 묘목 심어 추가 보상 노린 듯”

LH 직원들이 묘목을 심어둔 건 개발제한구역의 농지를 매입할 경우 영농계획서를 제출하고 실제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만약 지방자치단체의 단속에서 실제 영농 활동을 하지 않았거나 허위 영농계획서를 제출한 사실이 적발되면 과태료를 물거나 고발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신도시 조성을 위해 토지를 매입할 때 추가 보상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한 감정평가사는 “토지에 심어진 수목 등은 이전비나 취득까지 보상받을 수 있어 투기꾼들이 애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보통 단가가 싸고 크게 관리할 필요가 없는 묘목을 많이 심는다”고 설명했다.

무지내동에 있는 농지 5905m²에도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인근 주민은 “2018년 매입한 뒤 바로 심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땅을 공동 소유한 LH 직원 A 씨는 과림동에 있는 또 다른 농지의 공동 소유자이기도 하다. 과림동 토지는 4개 필지를 합쳐 총 5025m²에 이른다. 한 주민은 “지난달 에메랄드그린 품종을 2000그루 정도 심었다”고 했다. 한 조경업체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묘목을 심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토지는 LH 직원을 비롯한 7명이 지난해 2월 22억5000만 원에 매입해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2억6000만∼5억4000만 원을 농협에서 빌렸다. 민변 관계자는 “LH 내부 보상 규정 기준을 알고 행동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라고 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농지를 사서 토지로 보상을 받으면 더 가치가 높은 주거용 토지로 받을 수 있어 추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LH 직원, 건물 사서 이사 오려 했다”

에메랄드그린 묘목이 심어진 농지를 공동 소유한 40대 LH 직원 B 씨는 이 땅에서 약 250m 떨어진 한 건물의 공동 소유자이기도 하다. B 씨는 토지 330m²와 연면적 273.5m²의 2층 건물을 2019년 9월 4일 매입했다. 농지를 매입하며 약 4억 원을 대출받은 B 씨는 해당 건물을 살 때도 약 5억 원을 은행에서 빌렸다. 주민들은 “동네에서는 B 씨가 부동산 쪽 일을 하는 업자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이 건물의 1층은 현재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2층은 숙소로 이용됐으나 지금은 비워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변에 따르면 B 씨 쪽에서 “직접 살겠다”며 2층을 비워달라고 했고, 현재 이들의 이삿짐 일부도 들어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업계는 B 씨 등이 매입한 토지에 실거주할 경우 토지 보상에 유리하다는 걸 알고 이사를 들어오려고 한 것으로 추정했다. 농지에서 농사만 짓는 것보다 실제로 해당 토지의 거주자로 인정받으면 이주대책 대상이 돼 이주정착금까지 받을 수 있다. 또 각종 기반시설 설치비용을 면제받아 토지보상액을 산정할 때 유리하다. 이런 혜택을 받으려면 해당 지역에서 1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신도시 지정 발표 뒤 이사했다면 이미 전입신고를 한 상태로 거주를 입증하려 이사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국토부는 다음 주까지 기초 조사를 진행하는 동시에 이 같은 투기 의혹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방지 대책도 마련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신규택지 개발과 관련된 국토부와 LH, 지방 공기업의 직원은 원칙적으로 거주 목적이 아닌 토지 거래를 금지하겠다. 불가피할 경우엔 미리 신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경찰 수사로 넘어가 LH 직원들이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토지 등을 매입한 것이 확인되면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죄나 공공주택특별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업무 처리 중 정보를 취득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관건이다.

권기범 kaki@donga.com·이새샘 / 시흥=김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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