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마지막 전쟁? 檢수사권 대국민 여론전 뛰어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일 11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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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사람도 어깨펴는 게 민주주의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새해맞이 참배 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검찰총장. 2021. 1. 4 김재명기자 base@donga.com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새해맞이 참배 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검찰총장. 2021. 1. 4 김재명기자 base@donga.com

윤석열 검찰총장이 1일 이례적으로 언론 인터뷰를 갖고 ‘수사·기소 분리’를 정면 반박하면서 여권이 밀어붙이고 있는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저지하기 위한 대국민 여론전에 직접 뛰어들었다. 국회 인사청문회나 일년에 한 번 있는 국정감사 때를 제외하고는 공개석상에서 의견을 말하지 않는 불문율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이 대면 인터뷰를 가진 것은 그만큼 검찰의 사정이 다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윤 총장은 여권의 수사·기소 분리 방안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축시켜 국민의 ‘체감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우려가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에 총장직 사퇴로 맞서야 한다는 검찰 안팎의 주문에 대해 윤 총장은 조직의 위기가 닥쳤을 때 수장이 무조건 사표를 던지고 보는 고전적 의미의 사퇴는 일단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윤 총장은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나는 어떤 일을 맡든 직을 걸고 해왔지 직을 위해 타협한 적은 없다”면서도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야 100번이라도 걸겠다. (하지만) 그런 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국민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셔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윤 총장의 거취 문제가 다시 떠오른 것은 여권이 검찰제도를 사실상 폐지하는 중수청 신설을 힘으로 밀어붙이자 조직의 안위가 걸린 이번 사안에서는 총장이 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당위론이 검찰 안팎에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또 유력한 야권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윤 총장의 잔여 임기가 5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윤 총장이 중수청 저지를 위한 사직을 차기 대권 후보로 치고 나가는 계기로 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결부된 탓도 있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을 포함한 장경태(왼쪽), 민형배 의원이 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중대범죄수사청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2.9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을 포함한 장경태(왼쪽), 민형배 의원이 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중대범죄수사청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2.9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더욱이 여권에서는 윤 총장의 대선 출마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검사 퇴직 후 1년간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한 검찰청법 개정안까지 발의해 윤 총장을 압박하고 있다. 중도 사퇴든, 7월 정상 퇴임이든 윤 총장이 총장직을 떠나기 전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면 윤 총장은 내년 3월 9일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검찰과 윤 총장 개인을 둘러싸고 돌아가는 이 같은 급박한 상황들 때문에 윤 총장이 조만간 모종의 결단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윤 총장 자신도 한 인간으로서 정치적 야망이 없지는 않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장이 개인의 야심을 이루기 위해 검찰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지금 윤 총장이 전면에 나선 것은 졸속으로 강행되고 있는 검찰 폐지 움직임의 부당성을 국민에게 바르게 알려야 한다는 이유에서일 뿐 다른 의도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0.10.22/뉴스1 © News1
윤석열 검찰총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0.10.22/뉴스1 © News1


윤 총장이 검찰 제도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검찰이 비리 권력자를 수사함으로써 힘없는 평범한 사람들도 어깨 펴고 살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윤 총장은 문민정부 이후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힘 있는 자도 처벌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검찰이 기여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윤 총장은 인터뷰에서 “우리 헌법이 담고 있는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범죄를 저질렀다면 똑같이 처벌받고 법이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군부독재를 문민정부로 바꿔낸 것이 과거의 민주화 운동이었다면 그 이후의 민주화 운동은 결국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일인데,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의 반부패 활동이 우리 사회 특권을 없애고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 윤 총장의 평가다.

윤 총장은 인터뷰에서 과거 권위주의 시절 재벌이나 정치인이 형사 처벌 받은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들이 형사 처벌 받는 것을 국민이 직접 목격하기 시작하면서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보통 시민의 권리의식이 고양됐으며, 이 ‘리걸 스탠더드’가 사회를 진일보하게 만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분석했다.

사실 역대 정권 교체기마다 부도덕한 대통령 본인을 비롯해 비리에 연루된 가족과 친인척, 측근 실세 등이 모두 검찰 수사를 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 비자금 수수 사건 수사를 비롯해 김영삼 정부 말기 김현철 씨의 국정개입 사건 수사, 김대중 전 대통령 두 아들의 비리 사건 수사, 수사 도중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 등이 모두 검찰 수사의 결과물이었다.

윤 총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이제 문재인 정부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을 둘러싼 국면이 대국민 설득전 양상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일선 검사들도 여권의 수사·기소 분리 주장에 허구성과 사실 왜곡이 있다면서 검찰 내부 게시판을 통한 의견 개진을 늘리고 있다. 이래저래 이달 더불어민주당의 중수청 신설 관련 법안 발의를 앞두고 다시 검찰과 여권 간에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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