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기른 머리카락 기부했어요”… 모발 기부로 소아암 환자에게 웃음 찾아주세요

박성민 기자 입력 2021-02-27 03:00수정 2021-02-27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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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운동본부, 전국유일 기부접수
가발 하나에 200∼300명 모발 필요… 시간-비용 많이 들어 中서 수입도
소아암협회, 12년간 345명에 지원… 작년부턴 코로나로 기부 발길 뚝
“환자들 탈모 스트레스 덜어줘야”
소아암 환자를 위해 모발을 기증한 박정욱 군(16)의 머리 자르기 전(왼쪽 사진) 후 모습. 박정욱 군 제공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박정욱 군(16)은 최근 가슴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부하기 위해서다. 모발을 기부하려면 길이가 25cm 이상이어야 한다. 박 군도 꼬박 2년이 걸려 30cm를 채웠다. 학교에선 성적을 유지하고,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는 것을 조건으로 장발을 허락받았다.

박 군이 모발 기부를 결심한 건 소아암을 앓았던 두 살 터울 형의 영향이 컸다. 어려서부터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카락이 빠진 형과 또래 환자들을 보면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늘 생각했다. 박 군은 “수능 때까지는 공부에 집중하느라 머리카락을 기르기 어렵겠지만 성인이 되면 다시 기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 부적합 모발 많아 중국서 수입도

박 군처럼 남자 청소년이 모발을 기부하는 경우는 드물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모발을 접수하고 있는 ‘어머나(어린 암 환자들을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5380명이 머리카락을 기부했다. 이 중 남성은 6%에 불과하다. 연령별로는 10대가 1672명(31%)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1234명, 20대 1215명 순이었다. 10대 미만도 449명, 60대 기증자도 7명 있었다. 가끔 아이의 배냇머리를 보내는 부모들도 있다. 모발 기부는 가발 가격이 부담스러운 소아암 환자들에게 단비와 같다. 매년 1000명가량이 백혈병, 림프종 등 소아암 진단을 받는다. 면역력이 떨어진 소아암 환자들은 일반 가발보다 화학물질 노출이 적은 인모(人毛) 가발을 쓰는 것이 좋다. 이들은 200만 원가량인 비싼 가발을 사거나 아예 구입을 포기한다. 서용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과장은 “협회를 통해서도 가발을 지원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가 매년 20건 정도 들어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엔 머리카락 기부도 줄었고, 가발 제작도 그만큼 드물게 이뤄진다. 2018년까지는 소아암협회와 가발 제작업체인 하이모 등 3곳에서 기부를 받았지만 이젠 어머나 운동본부 한 곳만 남았다. 소아암협회는 2018년 2만7259명 등 2007년 이후 12년 동안 8만6388명의 모발을 기부받아 345명에게 가발을 지원했다. 하지만 지난해 기증받은 모발로 만들어진 가발은 6개에 그쳤다. 가발 제작이 어려운 이유는 염색이나 파마로 손상된 모발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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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모 관계자는 “너무 짧아 가발 제작에 적합하지 않거나 손상된 모발을 골라내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며 “최근에는 중국에서 인모를 수입해 무료 맞춤 가발을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100g 중 실제 쓸 수 있는 모발은 10g 불과

실제로 가발을 만드는 과정은 어떨까. 기부된 모발 100g 중 실제 가발에 쓸 수 있는 모발은 10g 정도에 불과하다. 살균을 위해 산(酸) 처리하는 과정에서 손상된 모발들은 끊어지거나 사라지기 때문이다. 머리가 너무 가늘어도 힘이 약해 가발에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가발 하나를 만들려면 약 2만 가닥의 머리카락이 필요한데, 200∼300명분의 모발이 모여야 가발 하나를 만들 수 있다.

모발이 길수록 활용도가 높다. 홈페이지에는 ‘25cm 이상(최소 20cm 내외)’ 모발을 보내달라고 안내하고 있지만 실제 가발 제작에는 40cm 이상의 모발이 많이 쓰인다. 가발을 만들려면 한쪽 끝을 바늘로 꿰어 심어야 하는데 이때 40%가량이 접혀 총길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가발 공장을 운영하는 임헌향 씨가 기증받은 모발로 가발을 제작하는 모습. 임헌향 씨 제공
기증된 모발로 맞춤 가발을 제작하는 원터치헤어 임헌향 대표는 “주로 여학생용 가발을 만들기 때문에 모발이 길어야 자연스러운 가발을 제작할 수 있다”며 “기증된 짧은 모발을 모아 긴 모발을 구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가발 기부가 예년보다 쉽지 않았다. 맞춤형 가발을 제작하려면 직접 환자들을 만나야 하는데 감염 우려로 병동 접근이 차단된 곳이 많아서다. 김세윤 어머나 운동본부 연구원은 “소아암 환자들은 몸이 아픈 것만큼 탈모로 인한 마음의 상처나 스트레스도 크다”며 “올해는 협력 병원을 늘려 더 많은 환자들에게 가발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모발 기부#기부접수#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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