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파워 공수처 떴다, 공직사회가 떨고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1일 11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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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눈치 본다면 공수처 스스로 존재 의의 부정하는 격"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2021.01.21./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2021.01.21./청와대사진기자단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21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3년의 임기를 시작했다. 그간 조직의 위상과 처장 임명 절차 등을 둘러싸고 많은 진통과 논란이 있었던 공수처가 우여곡절을 뒤로 한 채 공식 출범의 닻을 올린 것이다. 1996년 참여연대가 공수처 설립을 포함한 부패방지법안을 입법 청원한 지 25년 만이며,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수처 설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지 19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

공수처법 제정 과정에서는 중복되는 검경 사건을 이첩 받을 수 있는 권한 등을 이유로 공수처가 자칫 ‘정권 호위기관’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야당에서 나온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수처는 ‘살아 있는 권력’의 부패를 감시하는 것이 본래 설립 목적이어서 공수처장과 소속 검사들이 외압에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우리 공직 사회의 청렴도와 신뢰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획기적 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수처가 그런 큰 기대를 받는 것은 우선 강력한 수사 권한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수처는 3급 이상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에 관한한 검찰과 경찰을 지휘할 수 있는 사실상 ‘절대 수사권’을 부여받고 있다. 검경이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할 경우 그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하고, 공수처장의 판단으로 중복 사건의 이첩을 요구하면 검경은 이에 응해야 한다고 공수처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01.21./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01.21./청와대사진기자단

수사 대상도 ‘3부 요인’을 비롯한 입법, 사법, 행정부의 3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그 가족을 모두 포함한다.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검찰총장, 서울시장 등 등 광역자치단체장, 판사 및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 고위 간부, 장성급 장교, 금융감독원장 등 우리 사회의 최고위 권력자들이 망라돼 있다. 현직은 물론 퇴직한 사람들도 수사 대상이다.

검찰과 법원, 경찰과 함께 ‘힘 있는 조사기관’으로 통하는 감사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의 3급 이상 공무원들도 비리가 있으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수사권’이나 ‘조사권’을 가지고 있는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곳의 3급 이상 공직자는 모두 공수처의 감시 대상에 올라 있는 것이다. 검찰이 과거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리 혐의 등으로 구속한 전례가 있는데 대부분 과거 청산 등 새로 출범한 정부의 정치적 동기에 따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사정(司正) 작업을 일상적으로 벌이도록 법으로 제도화한 것이어서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기 쉬운 검찰보다 공직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조계와 학계의 다수 시각이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공수처가 공직 비리를 많이 찾아내 처벌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공수처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공직사회의 부패를 차단하는 강력한 억제수단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막강한 권한만큼이나 김진욱 공수처장이 어깨에 짊어진 책임과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검찰이 있는 데도 공수처를 추가로 설립한 것은 그간 검찰이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큼 엄하게 수사를 했지만 ‘산 권력’ 앞에서는 미온적으로 수사하거나 심한 경우 비리를 덮은 과오가 종종 있어왔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공수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상징성이 큰 ‘1호 사건 수사’를 비롯해 향후 수사에서 권력의 눈치를 일절 보지 않는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공수처가 비리 공직자에 대한 수사 대상과 수사 착수 여부, 사법 처리 수위 등을 결정하면서 정치적 외압을 받아 사건 처리를 한다면 그 자체로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며 “김진욱 공수처장이 직을 건다는 각오로 전력을 다해 외풍을 막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공수처장은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청와대나 권력의 압력과 흔들기가 있을 경우 “의연하게 대처하겠다”며 “(외압을 막는 방패막이가 되는 것이) 공수처장의 첫 번째 과제가 될 것”이라고 공수처 독립성 수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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