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법무-檢 고위간부도 얽혔다, ‘김학의 블랙홀’

이태훈 기자 입력 2021-01-13 12:28수정 2021-01-1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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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수단 정당화할수 없다’는 민주주의 핵심 가치 훼손 지적
김학의 前법무차관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019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법무부의 긴급 출국 금지 과정에서 불거진 불법 의혹은 ‘절차적 정의’를 무시한 비민주적 공권력 행사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법집행 주무부서로 법 절차를 가장 철저히 준수해야 할 법무부와 대검에서 가짜 사건번호가 등장한 공문서 위조와 불법 조회가 공공연히 이뤄졌다는 공익신고서 내용은 당시 사건에 개입한 검사들이 공정한 법집행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케 한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106쪽 분량의 공익신고서가 발단이 된 이번 사건의 요지는 2013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별장 성접대 의혹’의 당사자였던 김학의 전 차관이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와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활동 개시로 재수사가 이뤄지자 이를 피해 2019년 3월 23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태국 방콕으로 출국하려 했고, 그 직전에 법무부와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이를 막는 과정에서 여러 불법행위가 초래됐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은 2013년 ‘별장 성접대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수사 권고와 2019년 검찰의 재수사를 거쳐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지난해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긴급 출금 과정의 대표적인 불법 의혹은 당시 대검 진상조사단에 파견 중이던 이규원 검사가 김 전 차관의 태국행 비행기가 이륙하기 10분전인 2019년 3월 23일 오전 0시 10분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보낸 ‘긴급 출금 요청서’가 긴급 출금의 요건과 절차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입국관리법상 긴급 출금은 3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금고형이 예상되는 ‘피의자’에 대해 ‘수사기관의 장’이 요청할 수 있는데, 이 검사는 당시 수사기관의 장도 아니었고 2013년 성 접대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김 전 차관은 2019년 당시에는 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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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사는 인천공항에 긴급 출금 요청서를 보낸 지 3시간 이후 법무부에 긴급 출금 요청 사후 승인을 요청하면서 검찰에 존재하지도 않는 내사번호인 ‘서울동부지검 내사 1호 사건’을 기재했다. 지검장 직인을 찍어야 하는 곳에는 ‘代 이규원’이라고 서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검사의 이런 행위에 대해 공문서 위조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긴급 출금이 무리하게 이뤄진 것을 친여 성향 검사들이 사후 수습하려 했던 정황도 공개됐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출금 다음날 서울동부지검장에게 “검사장이 내사번호를 추인한 것으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이 검사가 당초 인천공항에 보냈던 긴급 출금 요청서가 ‘수사기관장’의 승인이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사후에 보완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법을 잘 아는 검사들이 이처럼 무리하게 긴급 출금을 하게 된 배경을 문재인 정부 초기 과거사 진상조사를 강하게 추진했던 당시 분위기와 연관짓는 분석도 있다. 임기 초반 8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기반으로 강력한 통치력을 행사했던 문 대통령이 엄명을 내린 상황에서 대통령이 콕 찍어 지목한 김 전 차관의 해외 도피를 막지 못할 경우 돌아올 수 있는 책임 추궁에 대한 두려움과 조급함 때문에 무리수를 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금 닷새 전인 2019년 3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김학의, 장자연, 버닝썬 사건과 관련한 보고를 받고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했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훼손한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목적이 아무리 선하고 정당하더라도 위법한 수단을 사용해선 안 되고, 아무리 큰 죄를 지은 피의자라 하더라도 묵비권과 변호인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김 전 차관의 긴급 출금 과정에서 빚어진 불법 의혹들은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키워온 이런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파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은 법무부와 검찰에서 관련자들이 많은 데다 전현직 법무, 검찰 고위 간부들까지 연루됐다는 점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별도 수사팀을 구성해 전모를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해서는 수원지검 안양지청에서 지난달부터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사건의 규모가 지청의 수사 역량을 한참 초과하는 데다 친정부 성향 검찰 간부들이 연루된 사건의 특성을 고려할 때 공정한 수사를 위해 특임검사 임명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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