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서 쓴 직권남용 보검, 부메랑처럼 돌아 秋 사단으로 향한다

  • 주간동아
  • 입력 2020년 12월 5일 11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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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동아DB]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동아DB]
1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후 지금까지 끈질기게 이어진 ‘추(秋)-윤(尹)’ 갈등에서 직권남용죄가 양날의 칼로 등장했다.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격하기 위해 직권남용죄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 심리를 거치면서 오히려 추 장관 측이 ‘직권남용’의 부메랑을 맞게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검사 출신인 김영종 변호사는 “현 정부 들어 직권남용죄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고 있다”며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적용한 직권남용죄가 이제는 본인을 향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도 “윤 총장에게 징벌을 가하고자 하지만 마땅한 조항이 없으니 그동안 잘 활용되지 않던 형벌 조항을 발굴해내 억지로 적용한다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고 밝혔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 성립된다. 그러려면 먼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했는지’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상대방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이는 형법 제7장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 중 제123조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직권남용죄는 법원에서 범죄 구성 요건을 엄격하게 인정해왔기에 그동안 기소 단계에서 적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8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접수된 사건 1만4502개 가운데 기소된 건수는 4%인 580건에 불과하다.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는 “불법이거나 부당한 행위를 남용하는 것이 직권남용죄인데, 불법은 명확하게 판가름할 수 있지만 부당하다는 것은 해석 범위가 너무 넓어 모호하고, ‘의무 없는 일’ 역시 당사자의 의무가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판가름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러한 해석의 모호성 때문에 그동안 법조계에서는 직권남용을 쉽게 의율(擬律)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윤 총장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완규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도 직권남용죄 폐지론자에 가깝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5월 한국범죄방지재단의 학술경연회에서 ‘직권남용죄의 성립 요건’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논문에서 이 변호사는 ‘직권과 남용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게 안정돼 정권교체기의 정치적 악용 소지가 높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리는 윤 총장을 방어하는 데도 사용될 전망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변호사야말로 윤 총장이 왜 직권남용죄에 해당하지 않는지를 누구보다 법리적으로 잘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적폐청산에서 되살아난 ‘직권남용죄’
2017년 1월 20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동아DB]
2017년 1월 20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동아DB]
윤 총장도 직권남용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다소 무딘 칼에 불과하던 직권남용죄를 날카로운 칼로 고쳐 쓴 당사자라는 점에서 그렇다.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 초반 국정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등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며 현 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당시 직권남용죄는 적폐청산 관련 수사 곳곳에서 사용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같은 죄목으로 구속됐다. 김 전 비서실장은 1심에서 강요죄만 인정됐지만, 항소심에선 직권남용도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조 전 장관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설립 및 활동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역시 미르·K스포츠재단 비위를 인지하고도 감찰하지 않은 혐의(직무유기) 등으로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됐다. 우 전 수석은 국가정보원에 지시해 이석수 전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을 불법사찰한 혐의(직권남용)가 인정돼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법조계 인사들은 “문재인 정권이 전 정권 인사들을 단죄하려고 동원한 직권남용죄가 언젠가는 현 정권 인사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이는 현실이 됐다. 현 정권에서 임명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들 수 있다. 지난해 4월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이 두 사람을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들이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뒤 환경부 산하 기관장들을 임기 도중 사표를 쓰고 나가도록 압박했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최근 검찰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1부 심리로 열린 김 전 장관의 결심공판에서 재판부에 징역 5년을 구형했다. 함께 기소된 신 전 비서관에게도 징역 5년을 구형했다.

“尹 향해 쏜 화살, 秋 사단에 부메랑 될 수도”
최근 들어 추 장관도 직권남용의 부메랑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는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인사가 보복성 행위”라며 추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 ‘경제민주주의21’도 “추 장관 아들의 병가 및 휴가 연장 처리를 보좌관에게 지시한 것은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만든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 단체는 “또 추 장관이 채널A 수사와 관련해 검찰총장 외의 검사를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해 검찰청법을 위반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 그 밖에도 추 장관은 라임사건, 윤 총장 가족 사건과 관련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에 대해서도 직권남용 논란을 낳고 있다.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를 청구한 것과 관련해서도 직권남용의 화살이 오히려 추 장관과 그가 신임하는 검찰 측근에게 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법무부 감찰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추 장관 측이 무리수를 두며 윤 총장을 조사한 정황이 다수 드러났다.

먼저 추 장관의 측근인 박은정 감찰담당관이 직속상관을 ‘패싱’하면서까지 감찰과 수사 의뢰를 주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박 담당관은 감찰위원회 조사에서 직속상관인 류혁 법무부 감찰관을 배제하고 감찰과 수사 의뢰를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이유에 대해 박 담당관은 “보안 문제 때문에 추 장관의 지시에 따라 류혁 법무부 감찰관에게 관련 절차를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이는 사실상 직권남용죄를 자백한 것과 같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영종 변호사는 “검찰 역사에서 이번과 같은 일은 처음”이라며 “박은정 감찰담당관은 물론이고, 그에게 해당 일을 지시한 추 장관도 직권남용죄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담당관의 지시를 받았던 이정화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의 폭로 또한 추 장관 측의 직권남용 정황을 뒷받침한다. 앞서 이 검사는 검찰 내부망을 통해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 성립이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최종 보고서에는 빠졌다”고 밝혔다. 이 검사는 감찰위원회 조사에서도 ‘박은정 담당관의 지시를 받고 직권남용 방해죄 성립이 어렵다는 부분을 삭제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에 박 담당관은 “삭제 지시하지 않았다”고 반박하면서도 기록 공개 요구는 거부했다.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징계위원회에서는 일명 ‘판사 사찰’ 문건과 윤 총장의 직권남용죄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법무부 감찰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이 모두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지만, 징계위원회 결정은 이와 반대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징계위원회 위원이 대부분 추 장관 측근이나 그와 친분 관계가 깊은 인사들로 꾸려질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윤 총장 측은 법무부의 징계위원회 결정을 수용하지 않고 법적 대응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또 추 장관 측근이나 추 사단에 속한 검사들의 위법 행위와 그와 관련된 증거를 확보하면 방어 태세에서 공격 태세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68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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