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승계 선택 “건희에게 삼성을 맡기는 것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5일 10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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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 1일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2대 회장(왼쪽)이 취임식을 갖고 삼성그룹의 회사 깃발을 흔들고 있다. 동아일보 DB
1987년 12월 1일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2대 회장(왼쪽)이 취임식을 갖고 삼성그룹의 회사 깃발을 흔들고 있다. 동아일보 DB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의 총수가 되기까지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1987년 작고)의 3남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이건희 회장이 아닌 장남 맹희 씨에게 먼저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이건희 회장에게는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이 주축이었던 ‘중앙매스컴’을 맡기려고 했다. 이 창업주는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건희에게는 와세다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일 때 중앙매스컴을 맡아 인간의 보람을 찾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그 길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며 “건희에게는 고생스러운 기업경영을 맡기는 것보다 매스컴을 생각했던 것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회장의 큰형, 작은형인 맹희·창희 씨는 이 창업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1966년 경영에서 물러난 이 창업주의 뒤를 이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맹희 씨는 부친으로부터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차남인 고 창희 씨(1991년 작고)는 청와대에 삼성과 부친의 비리를 고발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사건으로 눈 밖에 나게 됐다.

이 창업주는 자서전에서 “처음에는 주위의 권고도 있고 본인의 희망도 있어 장남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 봤지만 6개월도 채 못돼 맡겼던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본인이 자청해 물러났다”고 했다. 창희 씨에 대해서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들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고 희망해 본인의 희망을 들어주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자연스럽게 후계구도는 이 회장 쪽으로 흘러갔다. 1966년 미국에서 귀국해 동양방송에 입사한 이 회장은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에 취임하며 실질적인 그룹 후계자가 됐다. 1979년 2월 28일자 동아일보는 “삼성그룹은 부회장제를 신설, 이병철 회장의 3남인 이건희 중앙매스컴 이사를 선임했다. 이로써 작년에 해외사업추진위원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씨는 이 회장을 이을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후계자로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이 창업주는 자서전에서 이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것 대해 “건희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유학 후 귀국을 하고 보니 삼성그룹의 전체 경영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룹 경영의 일선에 차츰 관여하게 됐다”며 “본인의 취미와 의향이 기업 경영에 있어 열심히 참여하여 공부하는 것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1987년 11월 19일 이 창업주 별세 후 곧바로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취임식은 1987년 12월 1일 오전 10시 호암아트홀에서 삼성그룹 사장단 및 임직원 1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회장은 취임사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90년대까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이후 삼성그룹은 이 회장이 이끌었던 27년간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후계구도를 두고 경쟁했던 형 맹희 씨가 그룹 경영에서 물러난 1973년 이후로도 별다른 교류를 하지 않았다. 맹희 씨가 2015년 8월 향년 84세로 중국에서 폐암 등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두 사람은 소송전으로 이어진 불화를 이어갔다.

2012년 맹희 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삼성생명 및 삼성전자,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이건희 회장이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 명의로 변경했다”며 이 회장을 상대로 재산 상속분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2014년 2월 26일 맹희 씨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이 회장의 승소로 일단락됐다.

김현수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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