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해녀학교 열풍, 왜?…잠수복 입고 직접 바닷물에 들어가보니

제주=전승훈 기자 입력 2020-09-25 16:05수정 2020-09-2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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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아내가 갑자기 해녀학교에 다니겠다고 했다. 뭐라고? 해녀가 되겠다고? 귀를 의심했다. 영화 기획자이자, 배우 매니저, 드라마 홍보마케팅 관련 전문가로 평생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잔뼈가 굵어 왔던 아내가 갑자기 웬 해녀?

아내는 올 4월 제주 한림읍에 있는 한수풀 해녀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전국에서 지원이 몰려 경쟁률이 수십 대 1에 이를 정도로 치열했다는데, 작년에 낙방의 고배를 마신 아내가 올해는 재수를 해서 기어코 들어간 것이다. 합격의 비밀은 자기소개서였다고 한다. “저를 붙여 주신다면 해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기획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해녀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블라블라~.”

아내는 5월 초부터 주말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행기 요금은 평균 2만 원가량으로 쌌다. 아내는 처음에는 토요일 새벽에 가서 일요일 오후에 올라왔다. 그러더니 점점 금요일 오후에 퇴근하고 내려가서 토, 일요일을 꼬박 바다에서 살았다.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자기 숨만으로 물속 깊이 잠수해서 소라, 전복 등을 따오는 해녀의 험난한 삶을 배우겠다는 21세기의 여성들은 대체 누구일까. 해녀학교는 왜 매년 입학경쟁률이 높아지는 것일까. 지난달 근속휴가를 맞아 일주일간 제주에서 해녀학교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잠수복을 입고, 오리발을 끼고 바닷속에 들어가 보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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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녀학교의 ‘바당’ 교실
제주 사람들은 거칠지만 아름다운 바다를 ‘바당’이라고 한다. 해녀학교 앞에는 방파제로 둘러싸여 있는 잔잔한 바당이 있었다. ‘교실’로 불리는 이 바다의 물속에는 미소를 짓고 있는 해녀상이 가라앉아 있었다. 안전요원이 지키는 방파제 인근에는 돌돔이 살고,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예쁜 범돔이 헤엄치고, 수천 마리의 에메랄드빛 멜떼(멸칫과 물고기)가 반짝거리며 몰려다녔다. 숨을 참고 4, 5m 물속에 잠수해 보면 갯민숭달팽이, 돌문어, 광어, 숭어들이 손에 잡힐 듯 오갔다.

토요일 오후. 해녀학교 학생들은 테왁 망사리를 들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 테왁은 해녀들이 물 위에 떠 있을 때 붙잡고 있는 부력장비로, 밑에 그물이 달려 있어 채취한 해산물을 넣을 수 있다. 물질을 가르쳐주는 강사는 귀덕2리 어촌계에 소속해 있는 31명의 60, 70대 해녀 삼촌들. 제주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 많은 분에게 ‘삼촌’이라는 존칭을 쓴다고 한다.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조별로 나뉘어 바다로 나아갔다. 출발하자마자 10m쯤 나갔을까. 한 조에서 ‘와!’ 하는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서 나온 해녀 삼촌의 손에 커다란 돌문어가 감겨져 있었다. 해녀 삼촌들은 호맹이(호미)로 바위를 뒤집어 채취하는 법, 물속에 센 조류가 있을 때 바위를 잡고 버티는 법, 뾰족한 가시가 있는 성게를 손으로 잡는 법 등 바다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자세히 전수해 주었다.



● 해녀가 연봉이 억대라는 소문이?
현재 4000명가량 남아 있는 제주 해녀의 대부분은 60, 70대 고령층이다. 고된 작업 때문에 해녀의 맥이 끊길 것을 우려한 제주도는 2008년부터 한수풀해녀학교에 예산을 지원해 신입생을 모집했다. 2017년부터는 전문 직업해녀 양성반도 개설했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 정식 해녀로 활동하는 사람은 50여 명에 이른다.

12일 한수풀해녀학교에서는 13기 졸업식이 열렸다. 4개월간의 고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 입은 전통 해녀복인 흰색 물적삼(상의)과 검은색 물소중이(하의)를 차려입고 졸업장을 받았다.

제주 한림읍 협재리에서 온 서지원 씨(26)는 해녀의 손녀다. 올해 77세인 할머니는 비양도까지 가서 물질을 했던 상군(上軍) 해녀였다고 한다. 비양도는 협재리에서 3km 해상에 있는 화산섬. 주위 바다에는 80여 어종이 서식하고 각종 해조류와 수산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쇼핑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서 씨는 미용사인 이모와 함께 해녀의 대를 잇기 위해 해녀학교에 등록했다.

“해녀의 매력은 ‘자유롭다’는 점인 것 같아요. 회사 생활과 달리 체력만 되면 나이 들어서도 제한 없이 할 수 있지요. 바닷속에 들어가면 더 자유롭죠. 협재해녀회에는 현재 해녀가 15명 정도 계신데, 대부분 연로하셔서 젊은 해녀학교 졸업생을 환영하는 분위기예요.”

서 씨처럼 직업반을 졸업하면 각 마을의 어촌계에서 1, 2년간 인턴 해녀로 일할 수 있다. 이후 어촌계원 80% 이상의 동의를 얻게 되면 수협에서 ‘해녀증(해녀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는다. 연간 의무 조업일수를 채우는 해녀들은 제주도로부터 의료비 혜택, 잠수복 지원 등을 받는다.

제주 해녀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식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는 강인한 생활력을 자랑해왔다. 이 때문에 ‘감귤나무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다’ ‘연봉이 억대다’라는 소문이 났다. 이동렬 해녀학교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바다에 씨알이 굵은 물건들이 많아서 10~15m 이상 깊은 바다에서 잠수하는 상군 해녀들은 연간 6000만~7000만 원 이상씩 벌었다고 한다”며 “요즘엔 바다에 백화현상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 다른 일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백화현상은 산호처럼 생긴 석회질 성분의 홍조류가 퍼져 바다 밑바닥을 하얗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해조류를 먹는 어패류도 사라지고 어장 황폐화 가능성이 커진다.



● 이직(移職)과 코로나… ‘한 달 살기’가 해녀학교 열풍으로
제주 사람들이 대부분인 전문해녀 양성 직업반과 달리 입문반의 풍경은 달랐다. 절반은 제주 이외 지역에서 지원한 사람들. 아내처럼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오거나, 제주에서 집을 빌려 한 달 살기, 석 달 살기 등을 하면서 해녀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의사, 요리사, 마케팅 전문가, 심리상담가, 작곡가 등 다양했다. 소설가나 방송작가, 유튜버 등 해녀와 제주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들려는 이들도 적잖았다.

해녀는 물에 들어갈 때 혼자 들어갈 수 없고, 반드시 ‘물벗’이라고 부르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즉 2명이 한 조가 돼 서로의 안전을 챙겨줘야 한다. 아내의 물벗은 총각 의사 선생님 이하은 씨(31)였다.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게 된 그는 제주도에 한 달 살기로 놀러 왔다가 우연히 ‘해녀학교 신입생 모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고 했다. 그는 “이직하는 과정에서 4.5개월간 시간이 비어 재충전과 휴식을 하고 싶었다”며 “원래 허리가 좀 아팠는데 여름 내내 바다에서 잠수하고, 채취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다 보니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을 전공한 김연주 씨(36)는 화장품 회사 마케팅부에서 10년간 근무했다. 지난해 퇴직 후 태국 발리, 푸껫 등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배웠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태국으로 갈 길이 막히자 제주해녀학교에 등록했다. 그는 “제주에 정착해서 언젠가 해녀를 하고 싶은 게 꿈”이라며 “그 전까지는 제주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거나 금속공예 전공을 살려 해녀를 소재로 한 콘텐츠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인형 씨(38)는 바다가 좋아서 아예 직장을 제주도에서 구한 경우. 2015년 숙명여대에서 심리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제주지방경찰청에서 범죄피해자 심리상담사로 근무하며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그는 “피해자 상담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경미한 우울증 같은 게 생기곤 하는데, 생명력 넘치는 해녀들의 삶에서 에너지를 받고 치유가 됐다”며 “수업 중에 해녀 삼촌이 직접 잡은 성게를 까서 입에 넣어주시던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윤정 씨(36)도 2018년 퇴사 후 한 달 살이를 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케이스다. 서울에서 스포츠마케팅 관련 일을 했던 그는 바다수영과 마라톤, 사이클을 겨루는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마니아다. 매일 바다수영을 할 수 있고, 총연장 223km인 제주 해안도로에서 사이클을 타고, 한라수목원과 올레길에서 마라톤을 즐길 수 있는 제주도는 그에게 환상 그 자체다. 그는 “해녀란 직업은 달리기나 자전거처럼 기계적 장치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기 숨만으로 잠수하고 채취하는 일이어서 커다란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 해녀를 꿈꾸는 해남(海男)들

해녀학교에는 남학생 비율도 10%가량 된다. 하지만 해남이 되는 길은 더 어렵다. 마을의 해녀회에서 받아주는 절차가 여성보다 훨씬 까다롭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가 해녀인 경우에 남편이 함께 물질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2014년 해녀학교를 졸업한 김은주 씨(53)와 남편 김형준 씨(53)는 서귀포시 공천포에서 부부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

‘해남’을 꿈꾸는 황태원 씨(36)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메인주방 셰프 출신이다. 5년 전 제주에 온 그는 한경면 용수리에서 숙박업과 식당을 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해녀학교 수업이 있는 토요일엔 식당 문도 닫고 물질을 배웠다.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를 좋아하는데 제가 직접 채취한 해산물로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내년에 직업반까지 마치고 해남이 돼서 아침엔 물질하고 저녁엔 식당을 하는 삶을 꿈꿉니다.”

또 다른 ‘해남’을 꿈꾸는 강혁주 씨(35)는 서울 강남구의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며 프랜차이즈 본사를 꾸리고 있는 CEO다. 해녀 학교 생활의 전반에 대해 영상을 찍고 사진을 담아서 졸업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이번 해녀 학교 졸업과 동시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직접 잡은 해산물로 샤브샤브 매장을 운영하는 꿈이 생겼다고 한다.

육지에서 온 이주민들의 경우는 카페나 식당, 게스트하우스를 5~10년씩 하더라도 배타적인 제주의 마을 공동체에 온전히 녹아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녀학교를 졸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해녀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어촌계에 가입되는 순간 이른바 마을의 ‘인싸’(인사이더)가 될 수 있다. 이학출 한수풀해녀학교 교장(귀덕2리 어촌계장)은 “해녀학교 졸업생 중에 실제 해녀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50여 명 정도”라며 “해녀가 되기 위해선 물질 실력보다 우선적으로 마을 공동체에서 인정을 받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졸업 후 서울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푸른 바닷물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했다. 해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물뽕 맞았다’라고 표현하는 증상이었다. 아내는 선언했다. “나 내년에도 직업반에 또 지원할 거야.”

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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