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000만원 수해 입고도… 100만원 내놓은 70대 농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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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폭우속에 빛나는 온정
구례군청 찾아 현금봉투 건네며 “더 어려운 이웃 위해 써달라”
대구 30대 “코로나 도움에 보답” 손 메모와 라면-생수 보내와
기초수급자, 연금 10만원 기부도

전남 구례군에 12일 수해 복구 자금 100만 원을 기부한 김종섭 씨가 자신의 축사를 둘러보고 있다(왼쪽 사진). 김 씨는 이번 장마철 폭우로 2000만 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 이날 구례군엔 대구의 한 30대 청년이 보내온 라면 한 상자와 6만 원어치의 생수가 도착했다. 구례=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구례군 제공
전남 구례군에 12일 수해 복구 자금 100만 원을 기부한 김종섭 씨가 자신의 축사를 둘러보고 있다(왼쪽 사진). 김 씨는 이번 장마철 폭우로 2000만 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 이날 구례군엔 대구의 한 30대 청년이 보내온 라면 한 상자와 6만 원어치의 생수가 도착했다. 구례=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구례군 제공
12일 오전 9시 반경. 전남 구례군청 군수 비서실에 예고 없이 찾아온 한 남성이 두꺼운 봉투를 내놓았다. 수더분해 보이는 이 남성은 구례군 마산면 냉천리에서 소 100마리를 키우고 있는 김종섭 씨(79). 그는 “적은 돈이지만 수해를 입은 주민들을 돕는 일에 써 달라”고 했다. 봉투에는 만 원짜리 지폐로 1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김 씨는 이번 폭우로 2000만 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 소 먹일 풀을 350묶음(약 14만 kg) 주문해 하천 주변에 쌓아뒀는데, 비가 쏟아지고 섬진강이 넘치면서 모조리 떠내려 간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 구례군 직원들도 “큰 피해를 보셨는데 어떻게 기부를 하시느냐”고 말렸지만 더 어려운 이웃들을 돕겠다는 김 씨의 의지는 확고했다.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서 만난 김 씨는 “구례군에 소 잃어버리고 축사 무너진 사람이 정말 많은데, 나는 피해를 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천운을 입은 덕분에 이렇게라도 있는 것”이라며 연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오히려 “돈을 조금밖에 못 보태서 미안하다”고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 씨는 최근 수해 관련 기사와 뉴스를 보다가 기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아내에게 “우리도 봉투 하나 준비해서 기부해야겠다”고 김 씨가 먼저 말을 꺼냈고, 아내도 흔쾌히 남편의 제안을 따랐다고 한다.

김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 모든 국민이 서로 돕고 살지 않았나. 그때 지원받은 것을 도로 환원하자는 마음으로 기부를 했고, 조금이라도 사정이 나은 내가 도움을 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돕기 위한 다른 지역에서의 온정의 손길도 이어졌다. 대구에서는 자신을 30대 청년이라고만 밝힌 기부자가 라면 한 상자와 6만 원어치의 생수를 담아 택배로 구례군에 보내왔다. 택배 상자에는 발신인의 주소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손 글씨로 쓴 메모지에는 “전남 지역이 침수로 많은 농작물 피해와 인명 피해가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그만 힘이나마 보탭니다. 우리 대구도 올해 초 코로나19 확산 때 많은 도움을 전남 지역으로부터 받은 만큼 우리가 이제는 도울 차례인 것 같습니다”라고 적었다. 전남도가 올해 2, 3월 코로나19가 확산됐을 당시, 대구경북지역에 마스크와 손소독제, 생활필수품 등을 지원한 데 이어, 대구경북지역의 확진자를 전남지역 의료기관에 수용했던 것을 떠올리며 택배를 보내온 것이다.

구례군 관계자는 “서로 사정이 넉넉지 않은데도 지원의 뜻을 밝혀와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며 “전달받은 물품과 기부금은 더 어려운 주민들을 돕는 일에 쓰겠다”고 말했다.

경남 하동군에 사는 기초연금수급자인 이막달 씨(71)도 연금을 따로 떼 조금씩 모아온 현금 10만 원을 11일 하동군에 전달하고 왔다. 이 씨는 “수해 복구 때문에 다들 고생이 많은데, 자원 봉사하시는 분들 맛있는 거 사먹는 일에라도 보태고 싶다”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급하게 떴다고 한다.

하동=김태언 beborn@donga.com / 구례=조응형 / 지민구 기자
#김종섭#수해 복구 자금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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