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함 1800기 물에 잠겨…“우리 엄마 어떡해” 유가족 통곡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9일 2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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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

9일 오전 광주 북구 동림동 사설 납골당인 S추모관 풀밭에 주저앉은 박모 씨(58·여)가 통곡했다. 2㎞ 떨어진 곳에 사는 박 씨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이곳에 모셨다”며 “큰 불효를 저지른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 제발 온전하게 남아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광주 북구 지역은 7, 8일 이틀동안 484.8㎜의 비가 쏟아졌다. 영산강 홍수통제소는 7일 오후 4시를 기해 영산강 지석천 남평교에 홍수 경보를 발령했다. 추모관은 다음날 오후 6시부터 침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추모관 인근 하천은 수위가 3~4m를 넘어서면서 범람이 우려되고 있었다.

●납골함 1800기 물에 잠겨…유가족 분통

침수된 납골당에는 양수기와 살수차, 소방차까지 동원돼 지하에 고인 물을 빼내고 있었다. 배수 작업이 더디자 발을 동동 굴렀다. 유가족들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망연자실했다. 추모관에 들어가 유골함을 확인하겠다는 유가족들을 경찰이 막아서면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가족 100여 명은 전날 밤부터 납골당 입구에 모여 밤을 지새웠다. 새벽부터 직접 물빼기 작업을 한 일부 유가족은 유골함을 손수 챙겨서 나왔다. 흙탕물로 범벅이 된 유골함을 닦는 모습도 보였다.

유가족들은 추모관 측의 안일한 대응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모 씨(47·여)는 3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16)을 이곳에 안치했다. 8일 오후 8시 31분 추모관에서 보낸 ‘지하가 침수돼 복구하고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남편과 함께 황급히 달려왔다. 이 씨는 ”홍수경보가 내려지고 물이 범람할 것을 우려했다면 서둘러 유골함을 옮겼어야 했다“며 ”물이 지하 천장까지 차오를 때까지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문자메시지조차 받지 못했다는 유가족도 있었다. 나주에 사는 신모 씨(38·여)는 ”오늘(9일) 아침에 뉴스를 보고 침수 사실을 알았다“며 ”누구하나 사정이 어떻게 됐는지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애태웠다.

추모관은 영산강 지천에서 200여 m 떨어져 있다. 10년 전 지어진 추모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로, 지하 1층에 8단의 납골함에 1800개가 안치돼 있다. 방재당국은 배수관의 물이 역류하면서 추모관 지하 1층 환풍기로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오후 배수가 끝나 유골함을 수습한 유가족들은 추모관 4층에 다시 안치하고 화장 후 재봉안하기로 했다

●고분군 물에 잠기고, 소떼는 사찰에 피신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고분군(사적 404호)도 물에 잠겼다. 고분군은 사적 지정 1~4호분이 있다. 8일 오후 영산강이 범람하면서 가장 아래쪽에 있던 사적 4호분이 물에 잠겼고 나머지 3기는 봉분 밑까지 물이 찼다. 고분군은 5세기경 조성된 마한시대 유적이다. 곡성에서는 민물장어 양식장 5곳이 물에 잠겨 장어 414만 마리 중 일부만 남고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례에서는 같은 날 오후 1시 경 소 떼가 섬진강 범람을 피해 해발 500m 사성암 앞 마당까지 올라왔다. 절 아래 죽연마을 한 축사에 있던 소 50마리 중 20마리로, 나머지 30마리는 산책로와 도로를 가로질러 오산(531m) 중턱에 머물렀다. 사성암 관계자는 ”암자 기물 전혀 건들지 않았다. 수해를 피해 사성암까지 서너 시간에 걸쳐 3㎞를 올라온 상황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이형주 기자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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