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경사 옆 펜션 허가…가평 펜션 참사, 소극적 행정이 낳은 ‘인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4일 20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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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산유리의 한 펜션에 토사가 덮쳐 소방당국이 중장비를 동원해 구조작업을 벌이는 모습. 일가족 시신 3구가 수습됐다. 2020.8.3/뉴스1 © News1
3일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산유리의 한 펜션에 토사가 덮쳐 소방당국이 중장비를 동원해 구조작업을 벌이는 모습. 일가족 시신 3구가 수습됐다. 2020.8.3/뉴스1 © News1
3일 경기 가평군 가평읍에서 빗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야산 토사가 흘러내려 펜션을 덮치며 3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소극적인 행정이 낳은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경사가 높은 지역에 건물을 짓는 것을 허가한 데다, 펜션 위쪽 토지를 과수원으로 개간해 지반이 약해졌는데도 불법이 아니란 이유로 별다른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 35도 가파른 암석 위 펜션… “지자체 관리 소홀”
4일 가평읍 펜션 사고 현장을 찾은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사고를 당한 펜션 위쪽 경사가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전 교수는 “펜션 위쪽에 있는 토지 아래 돌의 경사가 35~40도다. 가파른 경사 바로 옆에 펜션을 지으니 지반이 약해서 토사 붕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행 산지관리법 시행령은 산지의 평균 경사도가 25도 이하면 지자체 허가를 받아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임업정보서비스 시스템에 따르면 사고가 난 가평읍 펜션의 경사도는 10~15도였다. 시행령에서 허용한 경사도 기준에 부합한다.

하지만 이 경사도 기준은 지표면을 기준으로 해, 해당 펜션처럼 인근 토지에 가파른 암석이 들어있는 경우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이 전 교수는 “산지에 건물을 지을 때는 내부 암석의 경사도가 훨씬 중요하다”며 “지반 구조를 명확히 살펴서 위험 요소를 따져볼 수 있도록 규제를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펜션 위쪽에 있는 땅이 토사가 흘러내리기 쉬운 형태였다는 점도 이번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주변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면 펜션 뒤편 산지는 지난해 2월 가평군의 허가를 받아 임야에서 과수원으로 토지용도(지목)가 변경됐다. 일반 임야를 과수원으로 변경하려면 2가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산지복구준공검사’를 통해 임야 등 산지를 다른 목적으로 개발하는 데 적절한지 지자체가 살핀다. 또 지자체가 관개 시설 등을 만들기 적합한지도 따져본 뒤 ‘개간준공허가’를 내준다.

문제는 가평군이 과수원 아래에 펜션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토지를 지목변경 허가를 내줬다는 점이다. 가평군 관계자는 “토지 용도를 변경할 때 주변 주택과의 거리 등을 고려하는 규정은 없다. 과수원 허가를 낸 것에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과수원은 임야보다 물 흡수량이 2배 가까이 높아 토사 붕괴, 산사태 사고에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사고 당일 폭우로 흘러내린 토사는 과수원보다 위쪽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지반이 약한 과수원은 이 토사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함께 무너져 내려 펜션을 덮쳤다.

● “우면산 산사태 후에도 개선 없어”
가평군 홈페이지에 보면 가평군에만 189개의 펜션이 등록돼 있다. 대부분 산지와 가까운 위치에 자리 잡았다. 홈페이지 등록은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가평군에만 수백 개의 펜션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펜션 사고의 원인을 명확히 밝혀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가 또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2011년 폭우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한 뒤 서울시는 “과수원 등으로의 지목변경이 토사 붕괴나 산사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문제점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가 건물을 지을 산지의 지반 구조나 특성을 꼼꼼하게 살피고, 토사 붕괴를 예방할 배수로 등의 보호 장치가 잘 갖춰졌는지 파악해야 유사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평=김태언 기자beborn@donga.com
지민구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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