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성폭력 36%-폭력 19% 합숙소 생활중에 일어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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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폭력]‘가혹행위 온상’ 합숙소 실태는…
2013년 상시 합숙훈련 금지에도 초중고 380곳이 기숙사 운영
학생선수 5명중 1명 ‘합숙 생활’… 최숙현 부친 “딸, 생지옥이라 해”

문체부 “가해자 일벌백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과 최윤희 차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고 최숙현 선수 
인권침해 관련 관계기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 장관은 “이번이 체육 분야 악습을 끊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가해자들을
 일벌백계하겠다”고 말했다. 뉴스1
문체부 “가해자 일벌백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오른쪽)과 최윤희 차관이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고 최숙현 선수 인권침해 관련 관계기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 장관은 “이번이 체육 분야 악습을 끊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가해자들을 일벌백계하겠다”고 말했다. 뉴스1
“(숙소가) 완전히 생지옥이었대요. 생지옥.”

전화 너머로 들리는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고 최숙현 선수(22)의 아버지 최모 씨는 7일 분노로 목소리가 가라앉질 않았다.

“감독이 부모를 오라고 하더라고. 감독이 ‘저거는 정신 차리려면 엄마가 때려야 한다’고 하면서 때리라고 했어요. 숙현이는 서러워 울고 애 엄마는 가슴이 찢어지고….”

최 씨는 “집에 와서 ‘숙현아, 엄마가 때린 거 아프더냐’ 하고 문자하니까 ‘아니야, 안 아팠어’…”라며 말끝을 흐렸다.

○ “숙소 생활은 악몽”
최 선수의 아버지에 따르면 2017년 4월경 최 선수는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경북 경산에 있는 경주시청 선수 합숙소를 무단이탈했다가 이틀 만에 복귀했다. 당시 최 선수는 경북체고를 졸업한 뒤 막 실업팀에 입단한 상태였다.

최 씨는 “감독이 우리를 (숙소로) 오라고 했다. 숙현이가 도망갔다 왔으니 혼내야 한다고. 그러면 우리는 죄인 아니겠나. (아내가) 가슴은 아프지만 세게 때리지는 않았다고 하더라”고 했다.

6일 피해 사실을 증언한 고인의 룸메이트인 A 선수의 어머니 B 씨도 감독이 딸을 대신 혼내게 했다며 비슷한 정황을 전했다. B 씨는 “감독이 해외 훈련 가서 영상통화를 연결해 (딸을) 혼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들어와’라고 했다. 다른 선수 어머니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최 선수 등이 머물던 합숙소는 4층의 방 3개짜리 빌라로, 주요 가해자로 지목된 주장 선수와 최 선수, A 선수 등 3명이 합숙했다. 이곳에서 최 선수 등은 감독과 ‘팀 닥터’라고 불린 운동처방사, 주장 선수의 폭행과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운동처방사는 여성 선수들만 있는 공간에 밤늦게 찾아와 혼자 술을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최 씨는 “딸이 숙소 생활이 악몽 같았다고 했다. 완전히 ‘왕따(따돌림)’ 분위기였다고 했다”고 말했다.

B 씨도 “딸이 폐쇄된 공간에 있다 보니 모든 운동선수가 그런 줄 알고 살았다더라. 3년간 5, 6번 숙소에 다녀왔는데도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했다. 대한철인3종협회에 따르면 전국 12개 실업팀 선수 63명은 모두 합숙을 경험했다. 협회 관계자는 “합숙 기간 중 휴일을 보장하는 등 선수들의 합숙 환경을 개선할 방침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 법으로 막았지만 157곳 전원 합숙
최 선수를 비롯해 경주시청 동료 선수들의 피해가 벌어진 장소는 대부분 합숙소였다. 실제로 합숙소는 오랫동안 스포츠계 가혹행위의 온상으로 지목돼 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997∼2019년 판례 총 264건을 분석해 지난해 11월 발표한 ‘스포츠 분야 폭력·성폭력 판례 분석 결과’에 따르면 폭력은 43건 가운데 8건(18.6%), 성폭력은 136건 가운데 49건(36.0%)이 합숙소에서 발생했다.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합숙소 가혹행위를 막기 위해 2013년 학교체육진흥법을 제정했다. “상시 합숙 훈련이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원거리 통학하는 학생선수를 위해 기숙사 운영은 가능하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2019년 인권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교 313곳과 중학교 66곳, 초등학교 1곳 등 전국 초중고교 380곳이 여전히 기숙사를 운영한다. 157곳(41.3%)은 원거리 거주 학생이 아닌 근거리 학생까지 전원이 기숙 생활을 한다. 인권위는 전체 선수 4만7019명의 21.8%에 이르는 1만246명이 기숙사 또는 합숙소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태룡 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정책연구실 수석연구위원도 “합숙 훈련을 하면 단기간에 성과를 내긴 쉽다. 하지만 부상을 당하거나 폭언 폭행을 당하면 장기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기 훨씬 어렵다. 심지어 청소년기에 합숙하며 감독이나 동료하고만 소통하다 건강한 사회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조응형 yesbro@donga.com·김태언 기자
#체육계#성폭력#합숙소#가혹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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