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김정은, 국군포로에 강제노역 배상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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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2명에 2100만원씩 지급 판결… 한국 법원, 北통치자 관련 첫 결정
납북 피해자 등 유사소송 이어질듯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탈북민지원인권단체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왼쪽)이 탈북 국군포로 납북 피해자와 함께했다. 이날 법원은 피해자들이 북한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뉴시스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탈북민지원인권단체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왼쪽)이 탈북 국군포로 납북 피해자와 함께했다. 이날 법원은 피해자들이 북한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25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가 억류된 국군포로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한국 법원에서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이 같은 판단을 내리면서 납북 피해자 등 향후 비슷한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는 7일 국군포로 한모 씨(86)와 노사홍 씨(90)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들은 한 씨와 노 씨에게 각각 21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6·25전쟁 당시 국군으로 참전한 한 씨와 노 씨는 각각 1951년, 1952년 전투 도중 중공군에게 붙잡혀 북한의 포로가 됐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에도 이들은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고, 북한에 억류됐다. 이들은 1953년부터 3년간 북한 내무성 건설대에 소속돼 탄광 등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노 씨는 2000년, 한 씨는 2001년 탈북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노 씨 등은 3년간 못 받은 임금과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등을 내라며 2016년 10월 김정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은 2년 8개월 뒤인 지난해 6월 시작됐다. 피고 측이 소장을 전달받아야만 소송을 시작할 수 있는데 김정은에게 이를 전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법원은 공시송달을 통해 재판을 시작하기로 했다. 공시송달은 소장 내용을 법원 홈페이지에 올린 후 2주가 지나면 소장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우여곡절 끝에 재판이 시작됐지만 피해에 대한 입증부터 만만치 않았다. 국군포로 변호인단은 국가정보원 등지에 한 씨와 노 씨의 강제노역 행적에 대한 자료 협조를 요청했지만 국정원은 “보안상 이유” 등을 들어 거절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강제노역에 대한 체불임금이 아닌 각각 48, 47년 동안 북한에 억류된 것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소송 청구 이유를 변경해 소송을 이어갔다.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된 후엔 정확한 손해배상 액수를 정하는 게 쟁점이었다. 변호인단은 국군포로 1인당 6억 원을 제시했다. 다만 1953년부터 1993년까지 북한을 통치한 것은 김일성이었고, 1994∼2000년은 김정일의 통치 시기였다는 점에서 상속분을 따로 계산했다. 이들의 손자이자 아들인 김정은은 한국 민법상 친족들의 상속분을 제외하고, 2200만 원의 손해배상 의무가 발생한다고 변호인단은 주장했다. 엄태섭 변호사는 “계산한 상속분에서도 더 보수적으로 접근해 일부인 2100만 원만 청구한 것”이라며 “돈보다도 명예 회복을 위한 소송의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국군포로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변호인단은 국내의 북한 재산을 배상금을 요청할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국내 방송·출판사들이 북한의 영상·저작물을 사용하고, 북한에 내는 저작권료다. 2004년 설립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관리하는 이 돈은 2008년 박왕자 씨 피살사건 이후 대북 송금이 중단되면서 법원에 공탁돼 있어 지난해 12월 기준 20억 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은 북한과 김정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첫 사례다. 북한은 헌법상 국가가 아닌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지방정부와 유사한 정치적 단체인 비법인사단으로, 민사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변호인단의 주장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국군포로#강제노역 배상#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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