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투기 쓰레기에 담배꽁초까지…‘북악산 쓰레기 수거 작업’ 참여 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6일 1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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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서울 인근 산과 공원도 몸살을 앓고 있다. 가족, 연인 단위로 북한산 북악산 일대를 방문하는 이들이
 늘면서 일부 얌채족들이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본보 기자가 종로구 북악산공원관리소 관계자들과 함께 
직접 북악산로 일대를 돌며 쓰레기 수거에 나섰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서울 인근 산과 공원도 몸살을 앓고 있다. 가족, 연인 단위로 북한산 북악산 일대를 방문하는 이들이 늘면서 일부 얌채족들이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본보 기자가 종로구 북악산공원관리소 관계자들과 함께 직접 북악산로 일대를 돌며 쓰레기 수거에 나섰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주말마다 산과 공원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서울 도심에서 가까운 북한산 국립공원은 방문객 수가 4월 넷째 주 주말에만 8만 6220명이나 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나 증가한 수치다.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쓰레기 무단 투기’다. 버려지는 쓰레기 양이 배 가까이 증가했다. 서장원 북악·인왕산 공원 관리소장은 “오전에 청소해도 오후면 다시 쓰레기가 쌓이곤 한다”며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쉽다”고 말했다.

종로구청의 협조를 받아 12일 북한산과 이어진 북악산 일대 산책로 일대에서 쓰레기 수거 작업에 참여했다. 업무는 이날 오후 2시 부암동 창의문 부근 쉼터에서 시작됐다. 작업자는 기자와 임재찬 관리반장, 기간제 근로자 등 모두 7명. 평소 평일에는 6명, 주말에는 1명이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쓰레기 수거와 훼손된 울타리(난간) 계단 등을 보수하거나 잡목을 제거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이날은 쓰레기만 수거하기로 했다. 각자 100L짜리 종량제 봉투와 큰 집게를 양손에 쥐고, 인도와 차도를 따라 걸으며 쓰레기들을 줍는 일이었다. 쉽게 생각했지만 작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가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무단투기 쓰레기 적잖고, 금연구역인 산에 담배꽁초가 가장 많아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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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주변 쓰레기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산책로 양 옆에 일회용 종이컵부터 마스크, 우산, 휴지, 과자봉지, 피자 박스 등이 버려져 있었다. 북악산 경사로 부근에선 사고가 난 듯 깨진 승용차 범퍼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고 수풀 속에선 콘돔까지 눈에 띄었다. 500m 남짓 걸었을 때엔 이미 100L 종량제 봉투가 묵직해졌다.

10년 째 이 지역 관리를 맡고 있는 임 반장은 “가끔 집에서 가져온 음식물 쓰레기를 검은 봉투에 담아 도로변에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며 “요즘처럼 꽃이 피는 시기에는 잘 모르지만 겨울이 되면 산 쪽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가득하다”고 했다. 그는 “ 내가 가져온 쓰레기는 내가 가져간다는 국민의식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양한 쓰레기들이 발견됐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양은 담배꽁초와 빈 담배갑이었다. 산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꽁초를 버리다 적발되면 3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한다. 하지만 지키지 않는 이들이 적잖다는 증거였다. 서 소장은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피우다 꽁초를 버리고 가는 사례도 많다”며 “위생에도 좋지 않지만 화재의 위험이 커 해선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오후 3시경 북악스카이웨이 부근 쉼터, 차량을 잠시 정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을 찾았을 때엔 수북하게 쌓인 담배꽁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버려지는 쓰레기는 관리원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골칫거리다. 도로변은 물론 수풀 속에 버려진 쓰레기를 찾느라 한참을 머물러야만 했다. 한 기간제 근로자는 “눈에 보이는 곳에 버리면 청소하기라도 편할 텐데 술래잡기 하듯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쓰레기를 버려 수거하기도 어렵다”며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월요일은 쓰레기 산더미…무속인 굿판 자리까지 정리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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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반, 종로구와 성북구가 맞닿은 하늘교 입구에 도착하자 작업은 끝이 났다. 3.5km 남짓한 구간에서 수집한 쓰레기 양은 100L 봉투 4개 분량. 큰 집게로 쓰레기를 집어 봉투에 담는 작업을 반복한 탓에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고 팔은 저렸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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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된 쓰레기 중에는 멸종위기 관심대상인 오소리 사체도 있었다. 로드킬(교통사고)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 관리소 측은 사체를 관련 단체에 전달하기로 했다. 고양이 등 개체수가 많은 동물들의 사체는 일반 쓰레기와 함께 폐기한다. 하지만 오소리는 희귀종이어서 관련 단체의 연구에 도움이 된다.

최근 북악산 일대에는 야생동물뿐 아니라 유기된 개와 고양이도 적잖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기로 개 고양이 등을 키우던 사람들이 이사를 가거나 싫증이 나서 버리고 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이런 동물들에 보호단체들이 거처를 마련해준다며 주변 경관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관리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동물 보호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조심해줄 것을 당부했다. 버려진 개나 고양이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리사무소는 관내에 북악산, 인왕산, 북한산과 평창동, 부암동, 청운동 지역의 크고 작은 공원 등의 관리업무도 맡고 있다. 이들에게 일주일 중 가장 힘든 날은 월요일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로 주말 근무자가 적어 월요일이면 산과 공원 주변에서 수거해야할 쓰레기양이 100L짜리 종량제 봉투 10개를 넘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방문객들이 화장실에 버린 쓰레기로,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을 때도 있다.

민원 해결도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처리해야 할 숙제다. 민원이 가장 많은 곳은 인왕산. 기(氣)가 좋은 곳으로 알려져 제사를 지내는 무속인들이 많아 소음 민원이 끊이질 않는다. 제사를 지낸 뒤 남은 돼지머리, 양초, 쌀 등을 처리하는 일도 관리소 직원의 몫이다. 장난 전화도 이들을 괴롭힌다. 서 소장은 “늦은 저녁 ‘공원이 더럽다’거나 ‘산 정상에 쓰레기가 쌓여 있으니 빨리 치우라’는 전화를 받고 현장에 나가보면 사실과 다른 적이 많아 허탈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작업의 마지막 현장인 하늘교 앞에서 쓰레기를 담은 봉투들을 정리하는 동안 지나치던 한 등산객이 “여러분 덕분에 산이 깨끗해진다”는 감사 인사를 했다. 땀을 식히던 기간제 근로자는 “고된 일상이지만 이런 인사를 들을 때면 보람도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뻐근하던 허리가 조금은 펴지고, 저리던 팔의 통증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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