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민족주의는 초조감 탓… 韓 이제 대국 됐으니 좀더 여유를”

동아일보 입력 2012-09-13 03:00수정 2012-09-1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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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일관계 진단…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인터뷰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 아사히신문 주필이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한일 관계를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최대 위기로 진단했다. 하지만 그는 양국 국민의 두터운 교류가 최악의 사태를 막으면서 위기관리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 “과거에는 두 나라 일부 정치인이 한일 간 파이프가 돼 문제를 해결했지만 지금은 국민이 양국을 연결하고 위기를 관리하고 있다. 양국에 민족주의가 강해지고 있지만 동시에 한류 붐이 식을 줄 모르고 상대국을 오가는 관광객도 늘었다.”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언론인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64) 아사히신문 주필은 “요즘 한일관계가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가장 큰 위기일지도 모른다”고 진단하면서도 “국민 간의 넓고 깊은 교류가 위기 해소의 희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국(大國)이 된 한국이 좀 더 여유를 갖고 일본의 여러 가지 속사정도 좀 알아 주면 좋겠다. 일부 우파 정치인의 발언에 대해서도 대범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부탁했다. 와카미야 주필과의 인터뷰는 11일 도쿄(東京) 아사히신문사 내 주필실에서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이에 대한 일본의 반발로 악화된 한일 관계의 현주소에 대한 진단과 해법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
―먼저 최근 한일 관계를 평가하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3번째로 찾아온 큰 위기다. 첫 번째는 1973년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쿄에서 납치된 사건이고, 두 번째는 198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기술 문제가 불거졌을 때다. 이번 사태가 가장 큰 위기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는 군사정권에서 이뤄진 불행한 사건으로 한국이 이미 민주화돼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사건이다. 두 번째 위기가 터졌을 때 일본 총리의 명확한 사죄도 없었고 일본 내 역사인식도 지극히 모호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일본 총리가 여러 차례 사죄하고 천황(일왕)도 그 나름의 표현으로 과거에 대해 언급하면서 상황이 개선됐다.

이번 사태가 심각한 것은 어느 때보다 양국 관계가 좋은 때 발생했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은 민주화된 지 20년 이상 지났고 일본은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의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총리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국가를 대표해서 명확한 사죄를 했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의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이 나온 것은 일본의 사죄를 한국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공동선언에는 ‘화해’라는 표현도 담겨 있다. 이후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공동 개최가 있었고, 한류 붐이 달아오르면서 시민의 교류와 친교도 늘었다. 이런 가운데 당장 해결이 안 되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 문제가 부상했다. 갈등이 커지고 오래갈 수 있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다만 국민 차원에서는 일본 내 한류의 위력이 변함없고 한국인이 옛날처럼 반일(反日) 일색으로 흐르는 것도 아니어서 안심은 된다.”

―일본의 반발이 생각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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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도 일본의 반응이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30년 전과 다른 것은 TV와 인터넷 기술 발전에 따라 누가 어떤 행동을 하면 상대국에 영상과 함께 금방 전해진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국무 수행 차원에서 독도 방문을 가볍게 생각했겠지만 일본에서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영상이 일본에 대해 뭔가 한 건 했다는 자극적인 모습으로 비쳐졌다. 일본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천황에 대한 사죄 요구 발언도 대통령이 나중에 진의를 설명하긴 했지만 TV에 발언 내용이 반복해 보도되면서 감정이 상승됐다.

거꾸로 일본은 총리 친서를 반송하는 한국 외교관을 외무성 청사 정문 앞에서 문전박대하는 모습이 한국 TV에 비치면서 어떤 효과를 낳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앞으로 외교를 할 때는 영상효과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양국 견해는 크게 다르다.

“한국은 다케시마를 식민지화 과정에서 잃었다지만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는 식민지와 관계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를 같은 역사문제로 보고 공격하지만 일본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이 ‘이승만 라인’(평화선의 일본식 이름)을 긋고 갑자기 실효 지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선이 나포되고 몇천 명이 억류됐다. 총격도 있었으며 수십 명의 사상자도 발생했다. 당시 일본에서 꽤 큰 뉴스가 됐고 당시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느끼고 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 다케시마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사실상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룬다는 암묵의 합의를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사람도 바뀌고 하면서 이 합의가 사라지고 1990년대 후반 신한일어업협정을 계기로 다케시마 문제가 다시 부상했다. 한국은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한 역사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고 하는데 이러면 화해가 불가능하다. 1998년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 때도 다케시마 문제는 해결이 안 된 상태였다.

일본군 위안부는 1965년 국교정상화 때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다. 나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부가 특별 입법해 국가보상을 했으면 100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일본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무라야마 정권이 고민 끝에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었고 기금에서 보상을 받으려는 분에게는 총리의 사죄 편지도 동봉해 보내겠다고 밝힌 것은 일본 나름의 대응은 한 것이라고 본다.

아쉬운 점은 당시 한국 정부는 아무런 요구를 안 했다는 점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국내에서 해결하겠다는 말도 했다.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 때도 다른 얘기가 없었다.

그러다 지금 갑자기 사태가 악화됐는데,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얘기했으면 좋았다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나면서 한국 정부가 어려운 처지인 점을 알지만 한국도 역사적 경위는 알아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일본 내 보수 우경화 흐름이 우려스럽다.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수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걱정이다. 우파의 목소리가 커진 이유의 하나는 중국의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도발에 정부가 나약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과의 마찰도 겹쳐 보통 사람들 사이에 일본이 나약하게 당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번에 일본 국민은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고 천황이 사죄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 지금 일본의 민족주의는 과거와 달리 피해자 의식과 초조감에 따른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력이 상승하고 있고 전후 70년이나 지났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사죄만 하고 있어야 하느냐는 반감도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일부 우파 정치인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게 또 한국을 자극했다. 서로 자극해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중국이나 한국과 전쟁할 것은 아니다. 국민이 바보는 아니어서 어느 선에서 절충할 것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들이 계속 망언을 하는 등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일왕 관련 발언을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 대표인 총리가 사죄했는데 딴소리하는 정치가가 있는 것은 지극히 불쾌하고 실례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이런 정치가들의 발언에 하나하나 반응하면 한이 없다. 일본이 여유가 없고 피해의식이 커진 반면 한국이 멋진 대국, 일류국이 되었으니 조금 더 여유를 보이면 어떨까. 일본에 뭔가 이상한 발언이 있을 때 이런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괘씸하다고 하면 서로 불행해진다. 일본에도 여전히 어쩔 수 없는 사람이 있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다. 적어도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가 말하는 사죄는 인정해 주면 좋겠다.”

―앞으로 한일관계에 대한 견해는.

“아시아의 여러 변화 속에서 한일은 기본적으로 서로 손잡고 가야 한다. 원래 형제는 다툼도 자주 하지만 또 밖에서 문제가 생기면 손을 잡는다. 그런 관계여야 한다. 다케시마도 평화적 해결책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면 작은 다툼이 커지지 않도록 그대로 두는 게 좋겠다. 예컨대 한류스타에게 다케시마에 대한 생각을 묻거나 하는 것도 자제했으면 좋겠다. 양국 국민 간 관계는 적어도 근대 이후 최고로 좋다고 생각한다. 일한 양국 모두에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격언이 있다. 간단히 양국 관계가 좋아지진 않겠지만 이번 사태가 그래도 큰 눈으로 보면 나중에 그런 일도 있었다는 하나의 교훈이 되면 좋겠다.”
■ 日 대표적 知韓 언론인 와카미야 주필

▼ 월드컵 공동개최 제안 사설 ‘독도, 우정의 섬으로’ 칼럼도 ▼


1995년 아사히신문에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제안하는 사설을 썼다. 2005년에는 ‘한국의 독도 영유를 인정하되 섬 이름을 우정의 섬으로 하자’는 몽상(夢想)을 밝힌 칼럼으로 화제를 모았다. 2006년에는 요미우리신문의 보수 논조를 이끌어온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 회장과의 대담을 기획해 아사히신문사가 발행하는 월간지 ‘론자(論座)’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함께 비판했다.

△ 1948년 도쿄 출생

△ 1970년 도쿄대 법학부 졸업

△ 1970년 아사히신문 입사

△ 1975년 요코하마, 나가노지국을 거쳐 정치부 기자

△ 1981년 9월∼1982년 8월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어학연수

△ 1993년 논설위원, 한일포럼 창립에 참가

△ 1996년 정치부장

△ 2001년 5월∼2002년 1월 미국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연구원

△ 2002년 9월∼2008년 3월 아사히신문 논설주간

△ 2011년 5월∼아사히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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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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