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일 생길라” 24시간 지켜

낮에도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인도에 투명한 방수포로 덮인 포대가 600여 개 쌓여 있다. “쌀값은 농민 값, 대북 쌀 지원 재개하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포대 옆을 두르고 있었다. 이 포대는 도정하지 않은 벼. 인근 주민 이정렬 씨(62·여)는 “종종 지날 때마다 봤는데 이렇게 쌓아둘 거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게 낫지 않으냐. 어려워 밥 굶는 사람이 태반인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라며 혀를 찼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통일부의 제지로 북한으로 보내지 못한 ‘통일쌀’이 17일까지 넉 달째 서울시내 도로 한복판에 방치되고 있다. 이 쌀은 지난해 농업인의 날(11월 11일)을 맞아 민간 차원의 대북 쌀 지원을 금지한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전농이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1가 사무실 앞 대로변에 쌓아놓은 것이다. 벼 한 포대(40kg)를 도정하면 쌀 28kg이 나오니 모두 도정하면 약 1만7000kg 분량의 쌀이다. 한 끼에 150g의 쌀을 먹는다고 하면 약 400명의 학생이 다니는 학교에 9개월 넘게 무료급식을 제공할 수 있는 분량이 도로 위에 놓인 셈이다.
정부 정책을 놓고 통일부와 전농은 여전히 줄다리기 싸움을 하고 있다. 전농 측은 “국내 공급과 수요를 맞춰 적정한 수매가를 유지하는 데 대북지원은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며 “매년 북한에 보내던 쌀인데 이를 금지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통일부 인도지원과 관계자는 “전농이 보내는 쌀이 반드시 북한의 배곯는 서민들에게 간다는 개연성이 없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러는 사이 경찰은 매일 벼 포대를 감시하기 위해 인근 지구대 인력을 24시간 가동하고 있다. 17일 당번근무를 나온 한 경찰관은 “매일 2명이 4시간씩 돌아가며 근무를 선다”며 “혹시 없어지거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니까 지키는 건데 우리가 무슨 죄냐”고 하소연했다. 다른 경찰관은 “넉 달간 눈비 다 맞았고 밤이 되면 벼 포대 사이로 쥐까지 드나든다”며 “쌀만 아깝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측은 이런 ‘야적시위’가 전농과 농민단체들에 의해 연례행사처럼 반복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08년에도 농민단체들이 정부 쌀 정책에 반대하며 전국 36개 시군의 지자체 및 지역 농협 앞 68곳에 4만7192포대를 쌓았다. 지난해에는 총 62개 시군 136곳에서 15만8246포대(12월 2일 기준)를 야적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대부분 농업인의 날이면 쌓았다가 1∼2월경 철수해가는데 올해는 좀 더 오래 가는 것 같다”며 “벼가 상하지 않도록 바닥에 나무판도 깔고 적당한 시기에 철수하기 때문에 중앙부처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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