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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0월 25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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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만km²로 한반도와 비슷한 넓이인 카슈미르. 레드 제플린의 노래 ‘카슈미르’만큼이나 그곳은 평화로운 땅이었다. 수도 스리나가르 일대는 ‘행복의 계곡’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양들은 평화로이 풀을 뜯었고, ‘카슈미르 양모(羊毛)’는 세계에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카슈미르 왕 하리 싱에게 1947년 10월 26일 행복은 멀게만 느껴졌다. 파키스탄의 사주를 받은 파탄족 무장 세력이 수도 50km 근방까지 진격해오고 있었다.
힌두교도였던 싱은 이미 이틀 전 같은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 구원을 요청했다. 인도의 대답은 빨랐다. “군대를 보낼 테니 카슈미르의 인도 귀속에 서명하시오.”
이미 영국 지배 시대의 수많은 소왕국들이 파키스탄 혹은 인도로의 귀속을 결정한 상태였다. 험한 꼴을 보지 않으려면 인도 군대가 도착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싱은 문서에 힘주어 서명했다. 그 결정 때문에 조상 대대로 경영돼온 아름다운 땅이 20세기 최고의 화약고로 변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는 카슈미르 주민 200여만명의 77%가 이슬람교도라는 사실이었다. 영국 지배자들이 철수한 뒤 여러 소왕국들은 종교에 따라 인도 또는 파키스탄 귀속을 선택해왔다.
“왕이 힌두교를 믿는다고 인도에 붙어?”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으로서는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전은 2년 뒤인 1949년에야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끝났다. 인도령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로 분단된 것이다. 전쟁은 1965, 71년 두 차례나 재연돼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이해관계에 따라 중국과 미국은 파키스탄을, 소련은 인도를 지원하면서 갈등은 점점 복잡해져갔다.
오늘날 카슈미르는 여전히 분단 상태로 남아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각각 150기, 50기 정도로 추정되는 핵탄두를 상대방에 겨누고 있다. 갈등의 중심에는 당연히 카슈미르 귀속 문제가 놓여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지구상에서 핵전쟁의 위험이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파키스탄 국경을 꼽는다.
“만약 핵전쟁이 발발한다면?”
미 국방정보국은 900만∼1200만명의 사망자가 나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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