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은 내 친구 이름인데 학생들은 왜 날 ‘쌤’이라 부르지…”

동아일보 입력 2012-03-07 20:01수정 2012-03-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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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올리베라스 씨(한가운데)가 지난해 담임을 맡았던 죽전고 2학년 12반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가 공립고교 최초의 원어민 담임교사를 훌륭히 수행한 데는 공동 담임교사였던 최정자 씨(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의 도움도 컸다. 올리베라스 씨 제공
"한국인 교사도 담임을 꺼리는데…. 할 수 있겠어요?" 안경너머, 교장선생님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

'괜히 담임을 자청한건가.' 마음 한 구석에서 기대와 후회, 두려움이 교차했다.
내가 교장이라도 걱정이 클 것 같았다. 1996년 영어 원어민 교사(NET·Native English-speaking Teacher) 제도가 도입된 이후 외국인을 담임으로 임명했다는 학교는 들어보지 못했다. 성추행이나 마약복용 같은 범죄에 원어민교사가 자주 연루돼, 얼굴을 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키지도 않은 담임을 요청하는 나를 누가 반기겠는가.


하지만 선생님이 되는 건 어렸을 때부터의 오랜 꿈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열심히 해서 꼭 성과를 내겠다고 간청했다. 2011년 2월 드디어 교장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졌다. 이제 나는 경기 용인시 죽전고등학교 2학년 12반 담임교사 카를로스 올리베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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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에서 '쌤'으로

나는 토박이 뉴요커(New yorker)다. 푸에르토리코 이민 3세지만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고 뉴욕에서만 살았다. 2004년 초 뉴욕 포덤대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나자 바깥세상, 특히 아시아에 대한 호기심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중 1970년대 서울 용산 기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외삼촌이 한국행을 권유했다.

스물세 살이던 2004년 한국 땅을 밟았다. 경기 분당의 한 영어학원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회화를 가르쳤다. 재미있게 수업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름 분당 학원가의 유명인사가 됐다. 하지만 조금 허전했다. 초등학생들은 너무 어려 야외학습처럼 내가 원하는 방식의 수업을 하기가 어려웠고 학생들의 반응을 측정하기도 힘들었다. 마침 당시 고교 교사였던 학부모 한 분이 '원어민 교사를 해 보면 어떻겠냐. 죽전고교에 자리가 있다'고 알려줬다. 바로 면접을 봤고, 2006년 3월 죽전고 원어민 교사가 됐다.

그때 내 한국어 실력은 보잘 것 없었다. 처음 학생들이 나를 "쌤"이라고 불렀을 때 알아듣지 못했다. '샘(Sam)은 내 친구 이름인데 왜 카를로스를 샘이라고 부르지?'라고 의아해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이렇게 부른다는 걸 알았을 때 일종의 문화 충격을 느꼈다. 미국에서 교사(Teacher)는 직업을 뜻하는 '명칭'이지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아니다. 교사가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라는 점, 게다가 정규 학교는 물론 사설 학원에서 가르치는 강사에게도 같은 호칭을 사용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원어민 교사 편견 뛰어넘다

죽전고에서는 '한국어 벽' 말고 '편견의 벽'도 넘어야 했다. 일부 동료 교사나 학부모들은 원어민 교사 자체를 탐탁치 않게 봤다. 특히 원어민 교사의 근무태도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한국 상황을 무시하고 토요일 근무를 무조건 거부한다' '별다른 통지 없이 결근하거나 심지어 학교를 그만둔다' 같은 부정적인 말들이 어깨를 짖눌렀다.
'일반 기간제 교사와 비슷한 월급을 받고 주거비까지 지원받으면서 하는 일은 별로 없지 않느냐'고 냉소를 던지는 사람까지 있었다. 내 잘못이 아니니까 좀 억울하기도 했고 일부의 잘못이 과장돼 전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럴수록 나 자신부터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나는 토요일 수업을 자청했다. 20여 명 정도의 학생들을 모아 1학기에 한 차례 발행되는 죽전고 영자신문 '더 뷰(The view)'도 만들겠다고 했다. 학생들과 나만의 힘으로 신문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 신문 편집도 배웠다. "에이 쌤. 제가 이런 걸 어떻게 해요"라고 반신반의하던 아이들도 흥미를 보이면서 한 달 만에 32쪽의 첫 신문이 나왔다. 동료 교사들이 '전문가가 만든 것 같다. 너무 멋지다'라고 평가해줄 때 뿌듯했다.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은 학교 수업이 철저히 교사 위주로 진행된다는 사실이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오직 듣고, 적고, 외울 뿐이다. 50분 동안 자리에 앉아 강의만 듣는 일을 하루 10시간씩 반복하는데 어느 누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까? 수업 때 아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그들의 적극성을 발현할 수 있게 하는 게 좋은 교사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교과서에 아이스크림 이야기가 나오면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만들었고, 할로윈이 나오면 호박 인형을 만들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영어 단어 하나 외우는 것보다 영어권 문화를 체험하게 해야 아이들의 실력이 진짜 늘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왜 그 힘든 일을 자청해?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담임을 맡고 싶다는 갈증도 커졌다. 일주일에 몇 차례 아이들과 만나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한국인 교사처럼 아이들과 1년을 꼬박 함께 한다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담임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학교 윗분들께 내비쳤지만 '현행 법 체계 아래서는 원어민 교사를 정식 담임으로 임명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어느덧 정이 많이 든 동료 교사들도 나를 말렸다. "담임 보직이 얼마나 피곤한 줄 알아? 늦게까지 잔무 처리해야지, 각종 상담해야지, 애들이 싸우기라도 하면 경찰서에도 가야 해. 어휴, 그 힘든 일을 왜 하려고 그래…."

하지만 제대로 된 교사가 되고 싶다는 내 꿈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2010년 9월 죽전고에 새로 부임한 교장선생님에게 나의 희망을 알렸다. 처음에는 약간 반신반의했지만 곧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나도 31년간 영어 교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지만 사실 학교 안에서 영어를 제일 안 쓰는 사람이 영어교사일 때가 많아요. 그런 현실을 타개해야 하니 방법을 한번 찾아봅시다."

2011년 2월 '한국인 영어교사와 함께 2학년 12반의 공동 담임을 맡으라'는 발령이 났다. 한국에 온 지 7년이 흘렀고 내 나이도 어느덧 서른이 됐다. 원어민 교사를 정식 담임으로 임명할 수 없는 제도적 여건 탓에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처리 등은 한국인 교사가 맡고 아침 조회, 오후 종례, 야간 자율학습 지도, 학생 상담, 학부모 면담 등 실질적인 학급 운영은 내가 담당하는 구조였다. 뛸 듯이 기뻤다.

●꼴찌 반을 1등 반으로


학생 수가 33명인 2학년 12반은 죽전고 2학년 열두 개 반 중 유일한 외국어 특성화반이다. 외국어 특성화반이라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인 것처럼 들리지만 외고가 아니라 일반고인 죽전고에서 그동안 이 반을 거쳐 간 상당수 학생은 '문제아'였다. 당연히 반 평균성적도 나빠 2010년에는 열두 개 반 중 최하위였다. 많은 교사들이 담임을 맡기 꺼려하는 반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아이들도 '외국인 담임은 한국인 담임처럼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지 않겠지'라고 판단했는지, 눈치없이 행동했다.

빨리 이런 느슨한 분위기부터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학급 헌법(Class Constitution)'을 만들었다. 지각, 복장 준수, 성적 부진 같은 조항을 마련하고, 지키지 못할 때 어떤 처벌을 받는지를 상세하게 규정하고 학부모에게도 통신문을 보냈다. 헌법을 어긴 학생들은 첫째, 셋째 주 토요일에 봉사나 체육활동을 하도록 했다.

학생들의 수업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상당수 수업을 현장 체험으로 바꿨다. 수원 화성 등 유적지를 찾아 영어 안내문 오류 찾기를 하며 문법을 가르치고 서울 종로구 인사동을 찾아 외국인과 즉석 인터뷰하는 걸로 회화 수업을 하는 식이었다. '아이들이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의외로 학생들은 잘 따라왔다. 담임을 맡았던 그 해 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카를로스 선생님 반의 성적이 2학년 12개 반 중 가장 좋았고 점수도 평균보다 10점 이상 높았다"는 칭찬을 들을 때 눈물이 '찔끔' 나왔다.

●더 훌륭한 담임이 돼 돌아오리라

지난달 28일 나는 6년 간 정들었던 죽전고교와 잠시 이별했다. 한국에서 더 오래 담임을 맡고, 더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다. 원어민 교사로 일하려면 종전에는 미국의 주정부가 발급한 범죄경력증명서만 있으면 됐는데 원어민 교사의 강력범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2010년부터 미 연방수사국(FBI) 등 중앙정부기관이 발급한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FBI 증명서를 발급받으려면 4개월이나 걸린다고 했다.

가족이 보고 싶고, 새 증명서도 필요한 차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집에 들르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카를로스, 네 말투가 이상해졌구나"라고 했다. 8년째 한국에서 살면서 1년에 한 번 미국에 갔을 뿐이니 내 영어가 좀 이상하게 들리는 건 당연했다.

많은 한국인 영어교사들은 영어권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영어연수를 한다. 명색이 미국인이면서 나의 영어 지식은 지난 8년간 거의 늘지 않았다. 나도 이번 기회를 '어학연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더 멋진 담임이 되어 돌아오리라. 나는 한국 공립고교 최초의 원어민 담임교사니까.

하정민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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