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군(後軍) 좌우를 맡을 장수까지 정한 한신이 잠시 숨을 고르는데 갑자기 군막 한구석에서 으르렁거리듯 외쳐 묻는
“대왕께서는 항우가 초나라 군사를 분발시키고 그 세력을 한군데로 집중시키는 표적이 될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오래잖아 장수들이 패왕의 군막으로 몰려들었다. 패왕이 내준 전서(戰書)를 읽어 본 계포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무렵 패왕 항우는 해하의 낡은 성곽을 다 고치고 진채를 방벽과 보루로 둘러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
“항왕도 눈과 귀가 있으니 우리 군세가 얼마나 큰지를 알 것이오. 거기다가 제왕(齊王)과 회남왕 그리고 양왕이 각기 정
며칠 안 돼 해하 서북쪽 벌판에는 30만이 넘는 대군이 한나라의 깃발 아래 모였다. 크게 나누어 한왕이 몸소 이끄는
“우현(虞縣)의 한 산성에 들어 조참의 예봉을 피한 신은 어렵게 적진을 헤치고 팽성에 이르렀으나 그때는 이미 모
패왕이 진작 여음(汝陰)에서 회수를 건너 육현(六縣)으로 가는 것이 옳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때는 아직도 대
알아보게 변한 천하의 민심도 서초 땅을 점령하고 있는 한나라 세력 못지않게 강한 저항과 반발로 느껴져 패왕을
그 사이 한(漢) 5년 12월이 되었다. 그해 따라 추위가 길어 계절로는 이미 늦겨울에 접어들었는데도 해하(垓下)에서
“그렇지는 않을 듯합니다. 항왕은 타고난 무골(武骨)로 한 싸움 한 싸움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뿐 길게 보고 계책
한왕 유방을 따르는 세 갈래 군마가 진성을 떠난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워낙 대군이라 움직임이 느려 아직 수
“회남왕(淮南王) 경포가 이미 노관 유고와 더불어 구강(九江) 땅을 치고 있는 데다, 다시 제왕(齊王)과 양왕(梁王
“동해 바닷가로 나가면 관부(官府)의 손이 닿지 않는 이름 없는 섬이 많이 있다 하오. 뜻 맞는 이들 몇과 그곳에 조용히
“진성(陳城) 아래 싸움에서 한군이 마침내 초군을 무찔렀습니다. 항우가 몸소 앞장서 용맹을 떨쳤으나 한나라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