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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의 가인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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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21·끝> 보아

    한국 가수의 외국 시장 진출은 한류 이전에도 존재했다. 트로트의 전설인 이난영의 두 딸과 조카로 이루어진 김시스터스가 미국 CBS의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고 코스터스의 곡인 ‘찰리 브라운(Charlie Brown)’을 리메이크한 노래로 빌보드 R&B 차트에 오른 것이

    • 201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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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20> 배호

    1966년 2월, 장구한 한국 트로트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 중의 한 사람으로 영원히 남게 될 스물넷의 음악 청년에게 급성 신장염이라는 당시로서는 불치의 병마가 급습했다. 한국의 병원에선 신장 투석도 불가능했던 시기였다. 헌칠한 키에 어울리는 정장과 넥타

    • 201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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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18> 이승철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붐의 가장 그늘진 곳, 헤비메탈 밴드 문화는 소수 극렬 마니아들의 불타는 열광에도 불구하고 오버그라운드 진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 밴드들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을 호령하게 될 위대한 보컬리스트들을 배출한다. 이승철은 이 밴드 무브

    • 20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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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18> 한영애

    어느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보컬 하나만으로도 예술을 넘어 접신의 경지에 오른 여성 대중음악가,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차트의 톱을 차지한 적이 없지만 이 땅의 진지한 음악 수용자들로부터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지지를 한결같이 받아 온 한영애(사진). 그의 음악적 뿌리

    • 201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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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17> 장사익

    1996년 6월 7일 저녁 서울대 대강당을 빽빽이 채운 2000여 관객들은 하나의 작은 기적을 체험한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이후 60여 년 만에 음반 표현의 자유를 획득한 쾌거를 기념하는 ‘자유’ 콘서트의 중간 순서쯤, 두루마기 차림으로 나온 중년의 한 사내가 내뿜은,

    • 201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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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16> 심수봉

    정치적으로는 긴급조치, 경제적으로는 제2차 오일쇼크라는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의 1978년 늦은 가을, 대학가의 은밀한 신화가 된 김민기가 분단 이후 최초의 지하 음반인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송창식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담요를 두르고 녹음하고 있을 때 문화체육관의

    • 20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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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15> 김건모

    197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혁명적 낭만주의의 미학이 자유분방하게 개진되던 연대기라고 할 수 있고 198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양지와 음지 모두 강렬한 카리스마가 분출되던 시대로 규정할 수 있다면 1990년대의 그것은 아마도 스타 시스템에 기반한 재능과 개성이 백가

    • 201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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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14> 이선희

    폭발적이면서 동시에 호소력 넘치는 서정성을 겸비한 당대의 보컬리스트 이선희는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신데렐라의 꿈을 이룬 후 2005년 13번째 정규 앨범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조용필의 대척점에 서서 한국 주류 대중음악의 영광을 구가해 왔다. ‘추억의

    • 201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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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13> 김광석

    양희은의 당당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1970년대 자유주의 청년 세대의 상징이었다면 결핍과 슬픔을 승화하는 강력한 연민의 울림을 지닌 김광석의 목소리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까지 청년 세대들의 영원한 동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광석은 짧은 생애 동안 고작

    • 201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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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12> 이미자

    ‘아득히 머나먼 길을 따라/뒤돌아보며는 외로운 길/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지금 나 여기 있네….’ 1989년 가을, 개관 이래 11년간 국제가요제 같은 특별한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대중음악인에게 단 한 번도 무대를 내주지 않았던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완고한 문턱

    • 201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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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11> 이문세

    1982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문세의 데뷔 앨범엔 ‘가는 사람 갈지라도’와 ‘그날처럼’이라는 두 곡의 자작곡이 실려 있었다. 1970년대 한국을 수놓았던 통기타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품은 이 청년의 이상은 같은 해 발표된 조용필의 ‘비련’과 이용의 ‘잊혀진 계절’

    • 2011-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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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10> 양희은

    단 하나의 곡이 한 나라 대중음악 문화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을 수 있겠는가? 암울한 식민지에서 음반산업의 시대를 열어젖힌 1926년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그 노랫말처럼 파란만장한 한국 대중음악사의 불우한 숙명을 암시하는 것이었다면, 1971년 김민기가 만들고 양

    • 201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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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9> 신승훈

    2010년 신승훈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두 장짜리 베스트 앨범의 머리곡은 ‘You Are So Beautiful’이다. 1970년대 조 카커의 노래에서 제목과 첫 번째 두 마디 주제를 빌려 온 이 노래는 20년 동안 놀라운 절제력과 집중력을 발휘하며 단 한 번의 실족도 없이 견고…

    • 201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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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8> 나훈아

    1966년 서울 서라벌예고 2학년생이던 최홍기가 가수 나훈아로 다시 태어나는 데엔 그 자신의 말로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까까머리 소년은 마장동 스튜디오에서 사실상의 데뷔곡이 된 ‘천리길’과 그의 출세작이 된 ‘사랑은 눈물의 씨앗’ 등 네 곡을 단숨에 녹음한다. 그

    • 201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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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7> 김현식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1980년의 어두운 사회를 위안할 바로 그 즈음 슬며시 발표된 김현식의 데뷔 앨범을 주목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무려 5년 뒤 들국화가 화려하게 데뷔하기 직전 그의 두 번째 앨범이 나왔을 때 그의 이름은 바로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

    • 201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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