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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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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긴박했던 조선의 운명]③경술국치는 국제법적으로 무효

    《1910년 8월 22일 오후 창덕궁에서 열린 대한제국 마지막 어전회의. 순종 황제는 총리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조중응 등 일제 통감부와 사전 조율을 마친 대신들이 재가를 요청하는 문서를 앞에 두고 2시간 동안 침묵했다. 그 문서는 내각총리대신에게

    • 201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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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긴박했던 조선의 운명]②무력으로 점철된 국권 탈취

    《1895년 10월 8일 왕비시해사건(을미사변) 후 건청궁(경복궁 내 왕의 처소)의 고종은 일제에 의해 갇혀 지내야 했다. 달포가 지난 무렵, 왕을 구출하려는 친위 쿠데타가 있었지만 정보 누설로 친일 정권에 일망타진됐다. 왕비시해 소문이 퍼져 의병이 일어나면서 비로소 상

    • 201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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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의 기억서 100년의 미래 본다

    100년 전, 우리는 나라를 잃었다.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1910년 8월 22일, 그리고 일주일 뒤 순종 황제의 이름으로 이 조약이 포고된 8월 29일. 경술년의 국치(國恥)였다. 태양조차 다시 떠오를 것 같지 않던 충격이었건만 시간은 쉼 없이 흘러 조약이 포고된 지 어느덧 3

    • 201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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