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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자 출신 주도한 갑오개혁, 日 민비살해로 무너져[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서자 출신 주도한 갑오개혁, 日 민비살해로 무너져[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1894년은 한국 근대사의 분수령이었다. 김옥균 암살, 동학농민군 봉기, 청일전쟁 발발이 연이어 일어났고, 무엇보다도 갑오개혁(갑오경장)이 시작됐다. 내란(동학봉기)과 외세(일본침략)의 틈바구니에 좁게 난 낭떠러지에서 시도된 이 ‘혁명적’ 개혁은 개항 이후 조선사회가 쌓아온 …

    • 20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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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일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청일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1894년 한반도에서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은 1637년 병자호란 후 무려 250여 년 만이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전쟁이 없는 것은 세계사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그것은 팍스 시니카(Pax Sinica·청에 의한 평화)로 가능한 것이었다. 조선…

    • 20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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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떠난 직후 암살… “망명자 김옥균에게는 한중일 모두가 敵”[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日 떠난 직후 암살… “망명자 김옥균에게는 한중일 모두가 敵”[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을 일본 당국이 절해고도(絶海孤島), 오가사와라섬에 유배시킨 것은 지난 회에 살펴보았다. 여기서 약 2년간 고독, 질병과 싸우던 김옥균은 이번에는 홋카이도로 이송되었다. 일본 벽지에 그를 가둬 정치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 일본 정부의 의도였다. …

    • 202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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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옥균, 고종이 보낸 암살단에 격노… 日 망명 중에 상소문[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김옥균, 고종이 보낸 암살단에 격노… 日 망명 중에 상소문[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1884년 겨울, 갑신정변에 실패한 김옥균은 일본으로 도주했다. 그의 망명은 전 일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 신문들은 그를 ‘조선판 메이지유신’을 시도하다 실패한 비운의 혁명가로 묘사했다. 이후 일본은 정치적 곤경에 빠진 조선(한국) 정객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유길준, 이준용(…

    •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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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토 히로부미보다 앞서 조선에 깊이 간여한 이노우에 가오루”[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이토 히로부미보다 앞서 조선에 깊이 간여한 이노우에 가오루”[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우리는 흔히 한일 근대사에 관련된 일본 정치인 하면 이토 히로부미를 떠올린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오랫동안 한국 문제에 간여한 사람은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1836∼1915)라는 인물이다. 막부 타도에 앞장섰던 조슈번 출신으로 메이지유신의 원훈 중 한 명이다. 이토 히로부미보다…

    • 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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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한론’ 둘러싼 권력투쟁… 감정 대신 이성적 접근한 日[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정한론’ 둘러싼 권력투쟁… 감정 대신 이성적 접근한 日[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조선에서 흥선대원군의 10년 권력이 끝나가던 1873년 겨울, 일본에서도 메이지정부의 운명을 가를 거대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메이지유신의 영웅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정한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1868년 메이지유신 발발 후 일본은 조선에 신정부 수립을 알리고 국교…

    •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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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화된 몽상…‘굴욕 개항’ 콤플렉스가 부추긴 日 해외침략”[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현실화된 몽상…‘굴욕 개항’ 콤플렉스가 부추긴 日 해외침략”[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일본에서는 18세기 말, 19세기 초부터 해외 팽창론이 등장한다. 당시 각국이 각축을 벌이던 유럽이라면 모를까, 임진왜란 이후 수백 년간 전쟁을 겪지 않았고, 또 그럴 위기도 없었던 일본이니 희한한 일이다. 러시아가 홋카이도 부근에 출몰하는 것을 목격한 혼다 도시아키(本多利明)는 “…

    • 202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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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1880년대에 찾아온 개혁의 기회를 날리다”[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조선, 1880년대에 찾아온 개혁의 기회를 날리다”[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1880년경부터 1894년 청일전쟁 발발까지 약 15년간은 조선에 기회의 시기였다. 1876년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일본은 아직 침략적이지 않았다. 아니, 조선을 침략할 만한 국력이 없었다. 일본은 독립을 유지하고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는 게 능력의 한계치였다. 일본이 조선을 침…

    •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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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가 부강하면 어찌 오랑캐가 협박을…” 박규수의 울분[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나라가 부강하면 어찌 오랑캐가 협박을…” 박규수의 울분[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임진왜란 이후의 통신사 파견을 들어 당시 한일관계를 친선외교라고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파견 횟수를 보면 대략 20년 만에 한 번밖에 안 된다. 가뭄에 콩 나듯 간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통신사는 에도(도쿄)까지 가지 않고 쓰시마에서 대충 ‘때웠다’(1811년). 에도까…

    •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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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일’ 이전에 ‘항청’… 속국을 거부한 조선의 싸움[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반일’ 이전에 ‘항청’… 속국을 거부한 조선의 싸움[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전근대 시기 한중관계는 조공책봉체제하에 있었다. 그런데 악명 높은 이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형식적인 것이었다. 특히 18세기 중엽 이후에는 정기적인 사절단 파견과, 중국을 상국으로 대접하는 외교 의례만 지키면 나머지는 거의 조선의 자유 의사가 존중되었다. 병자호…

    • 2021-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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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큐 멸망 보고 조선내정 간섭 시작한 淸[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류큐 멸망 보고 조선내정 간섭 시작한 淸[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근대일본은 초기부터 유난히 해외팽창욕을 보였다. 이미 도쿠가와 막부는 1855년 아이누인들이 살던 지금의 홋카이도를 직할령으로 삼았고 메이지 정부는 이어서 일본인을 대거 이주시켰다. 그 너머 북방에도 관심을 보여 1875년에는 러시아와 사할린-쿠릴열도 교환조약을 체결하고 쿠릴열도를 …

    •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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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원군의 길, 메이지유신의 길[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대원군의 길, 메이지유신의 길[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1860년 무렵은 동아시아 근대사에서 획기적인 시기였다. 흔히 아편전쟁을 중시하지만 사실 그 영향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는 않았다. 서양 열강은 아편전쟁으로 시작된 중국과의 무역이 영 성에 차지 않았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애로우호 사건을 구실로 중국에 난입하여 1860년 베이징…

    • 202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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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격동의 19세기… 韓日 운명을 가른 순간[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격동의 19세기… 韓日 운명을 가른 순간[박훈 한일 역사의 갈림길]

    《1876년 한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가 체결되었다. 그로부터 지난 150년간 겪었던 일본과의 부대낌, ‘파란만장’이라는 말로밖에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역사를 새삼 반추하려 한다. 21세기 초엽인 지금 유쾌하지도 않은 이 기억을 굳이 반추하려는 것은, 이제야 그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 202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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