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바젤의 도미니쿠스 수도원 공동묘지에는 ‘죽음의 춤(Danse Macabre)’을 소재로 한 벽화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해골 둘이 아이를 둘러싸고 춤추고 노래하는 그림이다. 해골이 노래한다. “아장거리는 아가야, 너 역시 춤을 배워야 해/네가 울든 웃든 너 자신을 지킬 수 없어…
한 여성이 짐을 끌고 있다. 이것은 불가리아 태생의 예술가, 크리스토(1935∼2020·본명 크리스토 블라디미로프 자바체프)의 작품이다. 일견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일단 ‘웨딩드레스’라는 제목 때문이다. 아름다운 여성이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짐을 끌고 있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 삶에서 그래도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좋건 싫건 이 삶이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 중세의 광장에는 “죽음은 확실하다. 다만 그 시기만 불확실하다”(mors certa hora incerta)라고 적혀 있곤 했다. 죽음은 어쩔 수 없지만, 죽음에 …
사람의 신체 중 어느 부위가 가장 많은 정보를 줄까. 목일까? 거북이도 아니면서 거북목을 가지고 있으면, 그가 평소 컴퓨터 화면을 얼마나 오래 들여다보는지 말해준다. 피부일까? 사람의 피부 상태는 그 사람의 건강 상태와 스트레스 정도에 대해 일정한 정보를 준다. 뭐니 뭐니 해도 육질이…
풀밭에 누워 서너 시간 동안 하늘에 지나가는 구름을 하염없이 보곤 했다는 학생이 있었다. 그는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그는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누워서 구름을 본 것일까. 구름에서 아름다운 여인이라도 발견한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영국 시인 셸리의 시집 구름 삽화에는 여인이 그려…
간밤에도 착실하게 늙어갔다. 얼굴에 비누 거품을 칠하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거품에 대해 생각한다. 거품은 묘하구나. 내실이 없구나. 지속되지 않는구나. 터지기 쉽구나. 존재하기는 하는구나. 확고하게 존재하는 건 아니구나. 그러나 아름답구나.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구나. 그…
어느 날 자식이 입대한다. 입영하는 길이므로 자식은 특별히 화려한 옷을 입거나 특별히 누추한 옷을 입지 않는다. 대체로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떠난다. 그리고 며칠 뒤, 군복을 입기에 이제는 필요 없게 된 그 평상복이 우편으로 어머니에게 되돌아온다. 적지 않은 어머니들이 돌아온 그 옷…
하루 중 언제 박물관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을까. 언제 가야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호젓하게 관람할 수 있을까. 물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시간인 주말 오후는 피하는 것이 좋다. 박물관이 문을 여는 이른 오전에 가는 것은 어떨까. 그것도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예상외로, 아침에 박물관을 …
※ 이 글에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열면 꽤 많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얼핏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 뒤에는 그 사람 나름의 고충이 숨어 있다. 누군가 너무 돈을 밝힌다? 그는 어쩌면 가족을 간병하기 위해 큰돈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누군…
※이 글에는 ‘퍼스트 카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고 나면 더 이상 보기 전 마음이 아니게끔 만들어 주는 영화가 있다. 밀가루처럼 흩날리는 마음을 부풀어 오른 빵으로 만들어 주는 영화가 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 마음을 빵으로 만들어 준 영화, ‘퍼스트 카우’에…
최근 열린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는 이른바 역사 결의를 통과시켰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초석을 놓는 당대회에서 첫 번째 역사 결의를 채택한 적이 있고, 문화혁명 이후 새로운 중국을 천명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역사 결의를 통과시킨 적이 있으니, 이것이 세 번째 역사 …
*이 글에는 ‘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몸을 탐닉하는 영화 ‘듄’(砂丘)이 그리는 우주에는 동등한 국가들이 세력균형을 이루는 국제질서가 없다. 미래의 우주는 강력한 제국이 지배하는 곳이다. 제국이라고 해서 우주의 구석구석까지 직접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봉건 귀족들…
한국 사람이라면 대개 신라 화가 솔거의 일화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도(老松圖)는 너무 진짜 같아서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 같은 새들이 날아와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 화가 솔거보다는 머리를 벽에 쿵! …
갱 영화는 정치에 대해 의미심장한 진실들을 일러주곤 한다. 갱 영화는 권력, 조직, 리더십, 세력 다툼 같은 정치의 중요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코언 형제의 1990년 작 갱 영화 ‘밀러스 크로싱’은 정치 리더십에 관한 고전, 영화판 ‘군주론’이다. 1920년대 미국의 한 도…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말은 인간이 협잡과 음모를 일삼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권력 지향적이라는 뜻도 아니다. 인간은 정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게끔 되어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본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