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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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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가 알려준 ‘리더의 길’[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9〉

    바다가 알려준 ‘리더의 길’[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9〉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입항했다. 당직사관을 남겨두고 선원들은 상륙했다. 그렇지만 그 좋다는 로테르담에 왔으면 시내 구경을 한번 하는 것이 선원들의 권리이자 행복 그 자체이다. 하역 담당 총책임자라서 망설이는 1등 항해사에게 3등 항해사였던 나는 “1항사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당직 …

    • 202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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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십의 상징, 선장[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8〉

    리더십의 상징, 선장[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8〉

    조직의 수장을 흔히 ‘선장’에 비유한다. “선장으로서 이 위기를 잘 극복하겠다. 저도 여러분과 같은 선원의 한 사람으로 생사고락을 함께하겠다”와 같은 것이다. 선장은 조직을 이끌고 위기 탈출을 주도하는 리더십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과거 여왕으로부터 항해의 명을 받은…

    •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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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쥐는 승선 금지![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7〉

    쥐는 승선 금지![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7〉

    처음에 배에 올랐을 때 생소한 단어가 ‘deratting’이었다. 외국에 입항하면 선박에 쥐가 없다는 사실을 선장이 확인해주어야 입항이 가능하다. 외국의 쥐가 선박을 통해 자국에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입항 국가는 선박 내 쥐가 모두 박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구서증서(驅鼠證書·d…

    • 20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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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선사’를 아시나요[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6〉

    ‘도선사’를 아시나요[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6〉

    해상법 수업을 시작하기 전 “오늘은 도선사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주의할 것은 도선사(導船士)는 서울에 있는 사찰 이름인 ‘도선사(道詵寺)’가 아니라는 점입니다”라고 유머를 던지면 학생들이 모두 웃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나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선장들이 항구에 들어오고 나갈 때…

    • 202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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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람 나오세요”[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5〉

    “한국 사람 나오세요”[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5〉

    선박에 승선하면서 외부와의 통신수단이 궁금했다. 첫 승선 당시 통신국장이라는 직책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통신장은 모스부호를 이용하여 전보로 회사에 보고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선박에도 통화 수단이 보급됐는데 인공위성을 이용한 전화 방식이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화가 가능했…

    •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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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원과 선식[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4〉

    선원과 선식[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4〉

    선박에는 20여 명의 선원이 승선하여 생활하고 있으니 먹을 것이 필요하다. 항구에 들를 때마다 쌀 고기 야채 식수 등을 실어야 한다. 세계 각국을 다니니까 싼 곳에서 필요한 것을 많이 실어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미국 서안에서는 오렌지와 고기 그리고 쌀을 싣는다. 현지 시장을 방문…

    •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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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일 항해 동안 벌어진 일[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3〉

    40일 항해 동안 벌어진 일[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3〉

    1983년 5월, 달콤한 첫 휴가를 마친 나는 A선박에 승선했다. 대만 가오슝에서 철재를 싣고 노르웨이의 나르비크항으로 가라는 항해 지시를 받았다. 북유럽 항구를 구경한다는 소식에 선원들은 흥분됐다. 그렇지만 도착하기까지 40여 일의 항해가 필요했다. 한국에서 미국 서안으로 가는…

    • 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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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의 동반자, 등대[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2>

    평생의 동반자, 등대[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2>

    동해안 축산항에서 태어난 나는 언젠가 우리 집 뒷산에 있는 흰 물체를 봤다. 등대였다. 녹색 대나무 숲과 푸른 하늘색을 배경으로 한 흰색 등대가 아름다웠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멀리 있는 집을 찾아갈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렇지만 그 등대를 길잡이 삼아 우리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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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섀클과 로프[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1〉

    섀클과 로프[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1〉

    우리 집은 수산업을 했다. 이 업을 위해서는 선박과 선원, 그리고 그물이 필요했다. 그물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으려면 선박과 그물을 묶는 밧줄이 필요하고, 밧줄과 선박을 연결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선박 몸체와 그물의 끝단에 각각 동그란 모양의 구멍을 만든다. 그리고 타원형의 장치를 이 …

    • 20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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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역대국 한국’ 만든 선원들[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0〉

    ‘무역대국 한국’ 만든 선원들[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0〉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바이킹의 후예도, 콜럼버스처럼 목숨을 바쳐 신대륙을 개척한 민족의 후예도 아니었다. 한국 선주들은 어떻게 해운업을 시작할지 막막했다. 먼저 한국 선원들은 미국과 일본 선주의 선박에 승선해 일하는, 소위 송출을 나갔다. 1960년대 …

    •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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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상 보너스의 추억[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9〉

    선상 보너스의 추억[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9〉

    선원이 가족과 떨어져 힘든 선상 생활을 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선원 봉급은 육상의 동료들보다 3배 많은 것이 원칙이다. 출퇴근이 없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1.5배 정도다. 봉급 대부분은 집으로 보낸다. 기타 수당들이 있는데, 이는 선원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친…

    •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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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원에 대한 존경[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8〉

    선원에 대한 존경[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8〉

    선원이 존경받아야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바다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항해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다에선 선박에서 떨어지면 바로 목숨이 위험하다. 그래서 배를 탄다는 것은 무섭고 두렵다. 필자도 세 번 정도 저승사자 앞에 다녀왔다. 1등 항해사 시절이었다. 큰 선박이 …

    • 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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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정기선의 추억[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7〉

    부정기선의 추억[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7〉

    필자는 선원 시절 원목선, 유조선, 철광석 운반선 등 부정기선에 승선했다. 태극기를 단 정기선을 한번 타보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부정기선의 매력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정기선은 입출항 시간과 항로가 정해져 있고, 같은 구간을 반복 운항한다. 컨테이너 선박이 대표적이다. 예를 …

    • 20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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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의 전설이 된 선장들[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6>

    바다의 전설이 된 선장들[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6>

    선장은 정해진 당직 시간이 없다. 24시간 당직이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에는 취미 활동을 한다. 신동아 등 월간지를 외우다시피 하는 선장도 있다. 그는 식사 시간에 월간지 기사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어준다. 특정한 물건을 집요하게 수집하는 선장도 있다. 가끔은 천재성…

    •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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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승선의 기억[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5〉

    첫 승선의 기억[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25〉

    처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선원이 되기 위해 해양대 4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다음 처음으로 외국에서 승선을 할 때였다. 백지 위에 하나씩 승선의 추억을 쌓아가는 첫 그림이었으니 그 장면이 생생하게 남는 것은 당연하다. 1982년 부산에서 2주간의 승선 교육을 받고 …

    •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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