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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동강 재첩의 추억[김창일의 갯마을 탐구]〈81〉

    낙동강 재첩의 추억[김창일의 갯마을 탐구]〈81〉

    “재칫국 사이소, 재칫국.” 재첩국 아지매의 목소리가 잠결에 환청처럼 크게 들렸다가 점점 멀어지며 희미해질 즈음 급하게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곤 했다. 골목길을 누비던 재첩국 아지매의 독특한 억양과 목소리를 부산의 중장년층은 기억할 터. 뽀얗게 우러난 국물에 부추를 썰어 넣은 맑고 은…

    •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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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부와 소비자의 직거래[김창일의 갯마을 탐구]〈80〉

    어부와 소비자의 직거래[김창일의 갯마을 탐구]〈80〉

    “당신은 해양문화를 전공하니까 커뮤니티 플랫폼이 어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미래를 내다보는 해양민속학자가 되시길.” 지난주 아내가 보낸 문자메시지다. 지금껏 칼럼을 쓰면서 아내를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다. 수산시장이나 마트에서 해산물에 대해 잘 모르는 아…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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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리던 물고기에서 귀한 물고기로[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9〉

    버리던 물고기에서 귀한 물고기로[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9〉

    경남 남해군 창선도에서 섬 소년으로 자랄 때 바닷가는 놀이터였다. 여름방학 때는 수영하다가 조개, 홍합을 채취하거나 족대질로 갯가재 등을 잡아서 구워 먹으며 점심밥을 대신하기 일쑤였다. 사시사철 즐기던 놀이로는 낚시만 한 게 없었다. 그 시절엔 초등학생쯤 되면 스스로 만든 낚싯대를 여…

    • 202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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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산물 맛은 유통에서부터[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8〉

    수산물 맛은 유통에서부터[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8〉

    예전에는 비늘 없는 천한 생선이라 했다. 요즘은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수산물 자리를 놓고 오징어와 엎치락뒤치락한다. 2000년대 이후 연근해 어업에서 줄곧 3대 어종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등어 얘기다. 대부분의 고등어는 대형선망어선으로 잡는데 전량 부산공동어시장으로 입항해 국내 …

    • 202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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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다림의 어업, ‘숭어들이’[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7〉

    기다림의 어업, ‘숭어들이’[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7〉

    바다를 터전으로 삼은 노인들은 반신반의한 눈빛으로 대강당에 앉아 있었다. 서울 소재 박물관에 근무하는 사람이 서해안 어업에 대해 강의한다니 미덥지 않았을 터. 조기, 꽃게, 젓새우, 숭어 등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틈틈이 질문을 했다. 서해에서 흔히 보던 어류였을 테니 나이 지긋한 청중들…

    •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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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어의 섬, 욕지도[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6〉

    고등어의 섬, 욕지도[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6〉

    얼마 전, 욕지도로 가족 여행을 갔었다. 통영에서 뱃길로 32km, 1시간쯤 걸리는 섬이다. 해안 둘레길을 드라이브한 후 과거 고등어 파시(波市)로 명성이 자자했던 자부포(좌부랑개)에 들렀다. 아내와 아들에게 파시를 설명하려다가 그만뒀다. 낡은 건물이 즐비한 곳으로 데려와서 지루하게 …

    •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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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척 마을박물관에 고하는 작별인사[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5〉

    삼척 마을박물관에 고하는 작별인사[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5〉

    과거 명태잡이 어업과 돌미역 채취로 부유했으나 지금은 시곗바늘이 수십 년 전에 멈춘 듯 쇠락한 어촌. 그러나 좁다란 골목길만큼 이웃 간 거리가 가까운 마을이 있다. 한파가 몰아치던 2013년 겨울, 어촌 문화를 조사하기 위해 삼척으로 갔다. 곧바로 빈집을 구해서 늦가을까지 마을에 거주…

    • 20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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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5년 전 조선인과 베트남인의 만남[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4〉

    335년 전 조선인과 베트남인의 만남[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4〉

    지난번 칼럼 ‘극한 공포와 미지로의 기행이 피워낸 표해록’에 대해 여러 질문을 받았다. 장한철 일행이 안남국(베트남) 상선에 구조됐다가 탐라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쫓겨난 사연과 김대황 일행이 안남국까지 표류했다가 먼 길을 되돌아온 과정 등을 주로 물었다. 안남국 표착 자료를 꼼꼼히 살…

    •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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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한 공포와 미지 기행이 피워낸 표해록[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3〉

    극한 공포와 미지 기행이 피워낸 표해록[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3〉

    항해 역사는 표류 역사다. 망망대해를 낙엽처럼 떠다니다가 외국에 표착한 조선인들이 있었다.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지 못한 채 해류에 목숨을 맡길 수밖에 없는 막막함과 공포에 휩싸인 나날. 천운으로 육지에 닿았으나 낯선 땅에서 우여곡절 끝에 송환된 사람들. 임진왜란 이후부터 19세기 말까…

    • 20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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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만 년 그물의 역사, 다시 분해되는 그물로[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2〉

    수만 년 그물의 역사, 다시 분해되는 그물로[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2〉

    박물관 전시실이나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그물추를 볼 때마다 고대인들은 그물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증이 생기곤 한다. 한반도에서 그물은 신석기부터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2018년 강원 정선군 매둔동굴 퇴적층에서 2만9000년 전 무렵 후기 구석기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물…

    • 202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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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로 자연에 맞서며 만든 제주 문화[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1〉

    돌로 자연에 맞서며 만든 제주 문화[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1〉

    제주 해안에서만 볼 수 있는 구조물이 있다. 용천수, 불턱, 삼판구조(혹은 이판구조) 포구, 도대불, 환해장성 등이 대표적이다. 해안 길 걸으며 마주할 때마다 원래 쓰임을 다하고 외면당하는 듯한 서늘함을 느낀다. 제주 어촌에는 반드시 용천수가 있다. 빗물이 현무암층으로 스며 지하로 흐…

    •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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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바닷가에 박힌 검은 보석, 도대불[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0〉

    제주 바닷가에 박힌 검은 보석, 도대불[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0〉

    어둠이 깔리면 어김없이 돌탑 꼭대기에 불 밝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불빛은 닿을 듯 말 듯 바다로 향했다. 물고기 잡으러 나갔던 어민들은 칠흑 같은 바다에서 희미한 빛을 따라 포구로 돌아왔다. 불빛을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돌을 쌓았는데 제주민은 도대불, 등명대, 갯불이라 불렀다. 빛의…

    • 20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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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바다의 진객, 대구[김창일의 갯마을 탐구]〈69〉

    겨울 바다의 진객, 대구[김창일의 갯마을 탐구]〈69〉

    대구는 신항로 개척의 이등공신쯤 줘도 될 듯하다. 15세기부터 유럽인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발견했다. 콜럼버스의 유럽∼아메리카 항로 개척과 마젤란의 세계 일주를 가능케 한 것은 항해술, 지도학, 선박 건조기술 등이었다. 이와 더불어 숨은 역할을 말린 대구가 했다. 건조 대구는 …

    • 202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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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싱한 굴, 한국 바다의 선물[김창일의 갯마을 탐구]〈68〉

    싱싱한 굴, 한국 바다의 선물[김창일의 갯마을 탐구]〈68〉

    패총에서 굴 껍데기 비중은 압도적이다. 여타 조개류와는 달리 눈에 잘 띄고, 숨거나 도망갈 수 없으므로 고대인들이 손쉽게 채취할 수 있었다. 패총을 마주할 때면 궁금증이 맴돌곤 한다. 수천 년 전 패류 독소에 중독되거나 사망한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굴 섭취로 인한 사망 기록은 조선시…

    • 202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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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복을 피해 도망간 사람들[김창일의 갯마을 탐구]〈67〉

    전복을 피해 도망간 사람들[김창일의 갯마을 탐구]〈67〉

    어떤 사람들에게 전복은 고통의 근원이었다. 전복 잡는 일은 힘들었고, 수탈당하는 것은 더 큰 고통이었다. 버텨내기 버거웠지만 피할 수 없었기에 바다로 가서 전복을 잡았다. “위태롭구나, 전복 따는 여인이여. 바다에 나가 맨몸으로 들어가네. 저 괴로운 생애 가련해서, 어진 사람은 차마 …

    • 202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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