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인트

연재

이기호의 짧은 소설

기사 53

구독 2

날짜선택
  • [이기호의 짧은소설]<32>5월 8일생

    [이기호의 짧은소설]<32>5월 8일생

    하나밖에 없는 우리 형은 애꿎게도 1981년 5월 8일 태어났는데, 거 참, 태어날 날을 스스로 정할 수도 없고, 개명하듯 생년월일을 바꿀 수도 없는 탓에, 해마다 생일에 자기 돈 내고 카네이션 사는 일을 근 삼십 년 가까이 해와야만 했다. 형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진 생일과 어린이…

    • 2015-05-13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31>도망자

    [이기호의 짧은 소설]<31>도망자

    처음 그는 잠깐 몸만 피할 생각이었다. 산속에서, 움푹 들어간 구덩이에 침낭을 깔면서 그는 오늘이 며칠째인가, 떠올려 보았다. 나흘째였다. 나흘. 그 시간 동안 그는 온전히 산속에서 노숙을 한 것이었다. 다행히 그동안 비는 오지 않았다. 그는 침낭 속에 들어가 눈을 감은 채, …

    • 2015-04-22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30>불 켜지는 순간들

    [이기호의 짧은 소설]<30>불 켜지는 순간들

    이승을 떠나 저승에 도착했을 때, 그의 몸엔 이상한 열기 같은 것이 맴돌았다. 그것은 일종의 자신감이자 모종의 기대감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죽던 그 섬광 같은 순간, 살아온 쉰일곱 해의 모든 시간들이 눈앞에 차르르르, 영사기 돌아가듯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스물여덟 나이에 고등…

    • 2015-04-08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29>웃는 신부

    [이기호의 짧은 소설]<29>웃는 신부

    신부는 큭큭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좀 난감한 심정이 되어 버렸다. 대학 친구 재만이가 마흔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간다기에, 그것도 열한 살이나 어린 신부를 맞이한다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사회를 보겠다고 나섰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러니까…

    • 2015-03-25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28>봄비

    [이기호의 짧은 소설]<28>봄비

    그는 노모를 업은 채 좁다란 논두렁길을 걷고 있었다. 봄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산은 그의 목과 어깨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는 마을회관 앞 공터까지 가려면 꼼짝없이 그 상태 그대로 논두렁길 끝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구두와 양복바지 밑단은 …

    • 2015-03-11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27>지방에서 산다는 것은

    [이기호의 짧은 소설]<27>지방에서 산다는 것은

    인구 10만이 안 되는 K시 지역 농협에서 근무하는 영호 씨는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는 아내가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재킷을 걸쳐 입고, 식탁 위에 올려두었던 자동차 키를 집어 들었다. “네가 앞장서!” 영호 씨는 거실 소파에 죄인처럼 앉아 있던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

    • 2015-02-25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26>송유관 절도 미수 사건

    [이기호의 짧은 소설]<26>송유관 절도 미수 사건

    정식과 만호가 땅굴을 파 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보름 전의 일이었다. 밤 여덟 시부터 시작해 새벽 네 시까지, 오직 삽과 곡괭이를 이용해 폭 일 미터, 높이 일 미터 오십 센티미터 크기의 땅굴을 파 내려간 것이었다. 땅굴이 무너지지 않게 천장과 양 벽엔 버팀목을 세웠고, 파 낸 흙은 마…

    • 2015-02-04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25>김 과장의 연말정산

    [이기호의 짧은 소설]<25>김 과장의 연말정산

    직장인들의 연말정산 시즌이니만큼 오늘 소설의 주인공은 C상사 홍보부에 근무하는 김진성 과장 되겠습니다. 자, 그럼 김 과장의 연말정산을 한번 따라가 볼까요? 제일 먼저 김 과장의 연간 급여 총액이 얼마인지 살펴봐야겠지요? 5300만 원이네요. 연봉이 그래도 꽤 괜찮은 편이지요. 올…

    • 2015-01-21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24>최후의 흡연자

    [이기호의 짧은 소설]<24>최후의 흡연자

    돈이 많냐고요? 하긴, 그런 질문도 수없이 받아 왔습니다. 이제 담배라는 게 지속적으로 피우긴 좀 어렵지 않습니까? 지금 담배 1갑이 얼마인가요? 그렇죠, 1갑에 25만 원이 맞죠? 제조공장도 대부분 문 닫고, 그냥 상징적으로 한 제품만 나오고… 그것도 구하기 어려우니까…. 그러네요,…

    • 2015-01-07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24>최후의 흡연자

    돈이 많냐고요? 하긴, 그런 질문도 수없이 받아 왔습니다. 이제 담배라는 게 지속적으로 피우긴 좀 어렵지 않습니까? 지금 담배 1갑이 얼마인가요? 그렇죠, 1갑에 25만 원이 맞죠? 제조공장도 대부분 문 닫고, 그냥 상징적으로 한 제품만 나오고… 그것도 구하기 어려우니까…. 그러네요,…

    • 2015-01-06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23>“술로 속을 푼다고?” 데이비드 로지의 연말 일기

    [이기호의 짧은 소설]<23>“술로 속을 푼다고?” 데이비드 로지의 연말 일기

    12월 6일 토요일 한국에 온 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일산이라는 곳에 거처도 구했고,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에 원어민 영어 강사로 취직도 하게 되었다. 나보다 반년 먼저 이 땅에 자리 잡은 토니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토니와 나는 아일랜드 골웨이에서 같은 칼리지를 졸업…

    • 2014-12-24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22>우리에겐 1년, 누군가에겐 7년

    [이기호의 짧은 소설]<22>우리에겐 1년, 누군가에겐 7년

    땅은 잘 파지지 않았다. 삽날이 언 땅을 때릴 때마다 둔탁한 쇳소리가 어두운 전나무 군락지 너머로 길게 퍼져 나갔다. 밤은 깊었고 무릎을 스치는 한기는 더더욱 뾰족해져 갔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나는 삽질을 하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남양주에서 부천으로, 그리고 다시 …

    • 2014-12-10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21>아들의 바람

    [이기호의 짧은 소설]<21>아들의 바람

    강당은 이미 만원이었다. 추첨 시간까진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아 있었지만 강당 맨 첫 번째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빈자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기수 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강당 맨 끝 구석, 접이식 철제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정복을 입은 경찰관 한 명이 커다란 저금통 모양의 추첨함을 단상…

    • 2014-11-26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20>마주잡은 두 손

    [이기호의 짧은 소설]<20>마주잡은 두 손

    1. 그 여자의 경우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그녀는 늘 지갑이 얄팍했다네.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해결했지만, 그 나머지를 위해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계속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네. 편의점 계산대에서 새벽을 맞을 때마다 그녀는 하루하루 자신의 용돈 기입장에 앞으로 벌어야 할…

    • 2014-11-12
    • 좋아요
    • 코멘트
  • [이기호의 짧은 소설]<19>눈으로 말해요

    [이기호의 짧은 소설]<19>눈으로 말해요

    지난 일요일 오후의 일이었습니다. 모처럼의 휴일인지라 늦잠을 자다가 정오 무렵 부스스 깨어나 짜장 라면 두 개를 끓여 먹었지요. 그러고도 몸이 계속 나른해 자취방에서 뒹굴거리며 재방송되는 개그 프로그램만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때는 단풍철인지라 하늘은 동해처럼 깊고 푸르게, 사방…

    • 2014-10-29
    • 좋아요
    • 코멘트